얼마 전 자식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언제까지 해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가 아직 어린 분도 계셨고, 자녀가 대학을 졸업한 경우도 있었는데 각자 생각이 다양했다. 일곱 살 된 아들 한 명을 두신 분은 고등학교 졸업까지만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학 등록금부터는 차용증을 써서 빌려준 후 나중에 취직을 하면 받으실 계획이라고 한다. 부부 두 분이 일을 하시고, 아이는 하나인데 왜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여쭤보았다. 결혼과 출산이 늦어 아이가 대학 갈 때쯤이면 은퇴하게 될지도 모르니 마음을 그리 먹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아들을 두신 분은 최근 자녀가 요구했던 경제적 지원을 거절한 사례를 들려주셨다. 앞으로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자신 또한 아무것도 받지 않을 계획이라고 이야기하셨다. 한 번 해주게 되면 바라는 게 계속 생길 수 있으니 처음부터 거절하는 게 좋다고 단호하게 얘기하셔서 조금 놀랐다.
그날 밤 자녀의 독립 시기는 언제가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지방에서 서울로 대학을 와서 자연스럽게 스무 살에 독립을 하게 됐다. 물론 경제적 독립까지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셨고 나는 네 명의 형제 중 막내라 용돈을 넉넉히 받을 정도는 아니어서 스무 살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스스로 돈을 벌어 용돈을 쓰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이십 대가 자립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는 데에 동의하면서도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던 그때의 고단함이 생각나 마음이 약해지기도 한다.
무조건적 지원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목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지원 범위를 달리하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분명한 건 독립을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부모의 어떤 태도가 자녀를 성숙한 독립 과정으로 이끌지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다.
문화라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