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를 기점으로 모임 양상이 달라진다.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며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행 2:46)으나, 스데반 순교 이후 박해가 심해지자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져 복음을 전한다. 복음이 유대와 사마리아 등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 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계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초대교회처럼 성도가 모이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을 다하도록 권하는 교회가 있다. 강원도 춘천 하늘평안교회(오생락 목사)다. 춘천에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 2월 22일을 기점으로 모든 예배를 온라인으로 전환한 교회는 지역사회에 수제 필터 면 마스크 1000여장을 전달학고 작은교회의 월세를 지원하는 등 코로나19 대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랑의 마스크 나눔
오생락(57) 목사는 21일 전화인터뷰에서 “지난 2월 22일은 평생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했다. 춘천의 코로나19 확진 첫 사례가 발표된 날이다. 소식을 접한 오 목사는 전 교인에게 ‘주일예배를 영상예배로 대체한다’는 긴급 문자를 보냈다.
“예배를 소홀히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영광을 위해, 성도와 춘천 시민의 안전을 위해, 보건당국에 협력하는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내린 결정이니 양해 바랍니다”란 메시지를 보낸 후 그는 교회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초유의 사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모이진 못해도 교회가 할 일은 하리라 마음먹는다. 그즈음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약국 앞에 줄을 서도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모습을 보며 장애인과 노약자 성도가 떠올랐다. 이들을 위해 오 목사 부부는 수제 마스크 500여장을 만들어 성도들에게 배부했다. 정전기 필터를 교체할 수 있는 형태로 1가정당 2매씩 제공했다. 거동이 불편한 이들은 집으로 직접 찾아가 우편함에 넣어줬다.
마스크 나눔은 교회 밖으로 확장됐다. 춘천시보건소에 200장, 마스크를 구하기 어려운 강원대 외국인 유학생에게 40여장을 전달했다. 이들 마스크를 포함해 지역 복지관, 해외 한인교회 등 외부에 전한 마스크는 1000여장에 달한다. 오 목사는 “마스크 5부제 초창기엔 마스크 구하기가 힘들어서 병원, 지역주민 등 요청하는 곳마다 만들어 보냈다”며 “지금도 필요한 곳에 마스크를 나누고 있다”고 했다.
작은교회 돕기는 사명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류정호 목사) 소속인 교회는 출석 교인이 450여명 정도다. 규모로 보면 중형교회지만, 최근 대형교회가 주로 펼쳐온 ‘작은교회 월세 지원’ 사역에도 나섰다. 오 목사는 평소 ‘작은교회를 섬기는 일이 우리 교회의 사명’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1991년 교회를 개척한 그는 “개척교회 목회자의 아픔과 외로움을 잘 안다”고 했다. 2008년부터 작은교회 목회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했고, 지난해엔 제자훈련과 바른 목회를 가르치는 ‘디사이플 목회 아카데미’를 열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인 2017년엔 부목사와 성도 50여명을 파송해 ‘하늘소망교회’를 분립 개척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작은교회 월세 지원 캠페인을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헌금으로 1500만원의 기금이 조성돼 교회는 다음 달쯤 100만원씩 작은교회 15곳을 지원할 계획이다.
민들레 홀씨처럼
오 목사는 인터뷰 도중 여러 차례 성도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는 “제자훈련을 잘 이해한 성도들 덕에 온라인으로 예배와 교육이 잘 이뤄졌다”며 “모이지 못해도 공동체 정신을 품고 예배와 나눔에 적극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성도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됐다”고 했다. 성도들 역시 교회의 코로나19 대처에 긍정적이다. 교회가 이달 초 성도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91%가 예배 및 모임 온라인 대체에 “매우 잘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온라인 예배가 필요하다’는 입장은 79%였다. 성도들의 긍정적 반응에 힘입어 교회는 지난 12일 부활절 예배를 인근 공영주차장에서 ‘드라이브 인’ 방식으로 드렸다.
정부가 종교시설과 학원 등 4대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운영 중단 권고를 ‘운영 자제 권고’로 한 단계 낮췄지만, 교회는 다음 달 10일까지 온라인 예배를 드린다. 작은교회는 현장 예배를 할 수밖에 없더라도, 여력 있는 교회는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게 사회에 본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오 목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돼도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고, 구역예배는 당분간 온라인으로 대체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모이긴 어렵더라도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꽃피우는 교회가 되겠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