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인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예배하는 교회다. 성령 충만한 예배자가 선교사다. 예배 없는 선교는 선교가 아니다. 선교의 결과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들을 열매로 맺는다. 오스 기니스도 그의 책 ‘소명’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일차적인 부르심은 그리스도에게로, 예배자로의 부르심이라고 하였다. 이차적인 부르심은 삶의 현장에서 사람을 섬기며 선교하는 것이다.
교회는 위기가 닥칠 때 본질이 드러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교회가, 성전에 모여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아니면 온라인으로 드려야 하는가 고민했다. 필라안디옥교회는 선제적으로 온라인 예배로 전환했다. 주위에선 ‘필라안디옥교회가 선교를 많이 하는 믿음 좋은 교회인 줄 알았는데 코로나19가 무서워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소리가 있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코로나19를 이때 허락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필라안디옥교회는 미국 중산층이 사는 백인 밀집 지역 한가운데 있다. 그들은 코로나19를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웃어선 안 된다.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루빨리 코로나19를 하나님이 종식시켜 주셔서 성전에 나와 함께 예배드리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지역사회의 미국인들을 위해 우리에겐 예배의 자유가 있지만, 지금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을 받았다.
구청과 시와 펜실베이니아 주지사도 10명 이상은 절대로 모이지 말라고 행정명령을 내렸다. 구청의 소방서장이 직접 교회에 와서 공문을 전달하고 갔다. 한국은 교회에만 명령을 지키라고 강요하지만, 미국은 모든 사업장에 이 규정을 적용했다. 교회는 나라의 법에 순종함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이 되는 선교적 교회가 된다.
코로나19는 바쁘게 사역하느라 뛰어다니던 우리 모두의 앞에 ‘스톱 사인’(정지 신호판)으로 나타났다. 갑자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졌다. 그 스톱 사인 앞에서 첫째, 유한성을 깨달았다. 무한하신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 앞에 나를 돌아보고 회개하며 주님과 사람의 관계를 회복하는 축복된 시간을 주신 주님을 찬양한다.
둘째,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던 예배, 모임, 주변 모든 사람이 귀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어주는 직원, 마트에서 식료품을 계산해 주는 분들, 의사 간호사를 비롯한 모든 의료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스톱 사인은 나 혼자 잘나서 사는 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 덕분에 더불어 산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회개하고 한 분 한 분을 향한 감사가 회복되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한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자 아무 동요 없이 성도들이 참여했다. 지금은 매일 새벽기도에 평균 55가구가 참여한다. 1부 한어 전통 예배와 2부 영어예배, 3부 젊은 가족 예배, 스페인어 예배, 다민족 열방교회, 젊은 유학생교회, 수요 예배에 예전처럼 자녀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의 질문이 오늘 우리의 질문이다. “유대인들의 주장대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아니면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요.”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했다. 장소의 문제가 아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지난 26년 동안 매 주일 자녀들과 함께 세대가 함께하는 선교적 예배를 드려왔다. 그랬더니 갑자기 온라인으로 전환해도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린다. 위기 속에 교회의 본질이 회복된 것을 보니 기쁘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든, 성전에서 드리든, 교회의 본질은 같다. 영이신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의 산 예배로, 성령의 충만함으로, 자유함으로 드려야 한다.
많은 목회자가 질문한다.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는데 헌금이 줄지 않느냐고. 처음 두 주는 줄었다. 그러나 두 달 넘게 온라인으로 예배드리면서 헌금이 오히려 조금씩 늘고 있다. 성도 중 자영업자가 많아서 가게 문을 못 열어 수입이 끊긴 가정이 많은데도 말이다. 성도들의 헌금으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지역의 작은 교회도 도울 수 있었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선교적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장소에 상관없이 예배드리는 교회를 뜻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성령 충만함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교회다. 신본주의적인 예배자는 영혼을 살리는 선교사가 된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드리는 예배가 없는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가 아니다. 인본주의적인 나의 봉사일 뿐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