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산업에도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오랫동안 주류를 이루던 화학약품 시대를 뒤로 하고 생물학적 의약품의 잇단 등장에 이어 전자약(電子藥)까지 새로이 싹을 틔우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의학과 전자공학이 융합되고 있다.
전자약이란 전자(electronic)와 의약품(pharmaceutical)을 합성해 만든 신조어다. 전기신호를 약처럼 사용해 질병을 치료한다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사용돼온 화학약품과 생물학적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치료 효과를 높이는 장점이 있다. 개발비도 지금 신약들에 비해 훨씬 적게 든다.
전자약이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7년, 프랑스 국립인지과학연구소 연구팀이 교통사고로 15년간이나 의식이 없던 환자의 신경을 전자약으로 3개월 만에 되살리는데 성공했음을 의과학계에 보고하면서부터다. 당시 이 연구팀은 환자의 목에 있는 미주신경(vagus nerve)에 전극을 삽입한 다음 뇌 속으로 전기신호를 전달해 신경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반응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고 보고했다. 전자약을 이용한 미주신경 자극이 그간 단절돼 있던 환자의 뇌피질과 시상 간 네트워크를 다시 활성화시킨 것이다.
전자약은 사실 아주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인류가 이미 쓰고 있던 치료법이다. 허리가 아프거나 목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을 때 사용되는 저주파치료기(TENS)나 간섭파 치료기 등이 기초적 형태의 전자약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척수신경 자극술, 뇌심부 자극술 등과 같이 척수나 뇌에 전극을 삽입하여 전기자극을 가하는 치료도 여러 질환에 자주 쓰이고 있다.
인체의 신경 전기신호를 모방한 파형을 사용하여 난치성 통증질환을 치료하는 스케나(SCENAR)와 같은 형태도 점점 적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스케나는 전기신호를 신체반응에 맞춰 조절하는 방식으로, 신경에서 신경펩티드를 분비하게 하여 만성 통증의 원인이 되는 조직 손상과 중추신경계의 과민화를 개선하는 방식이다.
현재 새로 개발되는 전자약들은 단순히 전기 자극만 가하는 기계를 넘어서고 있다. 각 신체기관 간의 전기신호를 조절하고 정상화해 줌으로써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정밀작업을 수행하는 ‘신약’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미 10여개의 전자약 판매를 승인한 상태다. 구글, 제너럴 일렉트릭(GE) 등 IT 선도기업들도 전자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앞으로 전자약은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 신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될 것으로 기대된다.
100세 시대를 맞아 고령 인구가 늘면서 노화와 관련된 각종 만성질환과 난치성 질환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현재 관절염, 만성통증, 뇌신경 질환, 방광질환, 근골격 재활 등에서 이미 새로운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는 전자약은 앞으로 다양한 난치성 질환 극복 의 신무기로서 각광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도준 민도준류우마내과의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