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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착해지자고 쿡 찌르는 시대



슬쩍 찔러 본 것은 대통령이었다. 지난 2월 13일 전주 한옥마을 건물주 14명이 상가 임대료를 석 달간 10~30% 깎아주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사태에 타격을 입은 상인들을 위해서였다. 나흘 뒤 문재인 대통령이 SNS에 글을 올렸다. “자발적인 임대료 인하 운동에 대한 보도를 보았습니다. 전주시민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착한 임대인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기를 기대합니다. 정부도 돕겠습니다.” 낮춘 임대료의 절반을 세액공제해 주는 정책이 나왔다. 두 달 만에 전국 3만여 점포의 임대료가 인하되거나 동결됐다. 인터넷의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임대료 인하를 고민하는 건물주와 상가 소유자의 글이 이어졌다. “안 깎아주면 나쁜 임대인이냐”는 볼멘소리도 섞여 있었고, 세입자가 “저희는 아직 괜찮다. 사장님도 힘드실 텐데 마음만 받겠다”고 해서 감격했다는 글도 보였다. 그렇게 하라는 법도 규정도 없는데, 많은 사람이 나도 그렇게 할까를 생각했고 또 그렇게 했다.

착한 임대인 운동에 동참한 프랜차이즈 기업이 몇 곳 있었다. 국내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25만개가 넘는다. 이들에게 수수료와 판촉비를 깎아주는 착한 프랜차이즈 운동이 시작됐다. 이번엔 공정거래위원회가 쿡 찔렀다. 동참하는 업체에 대출금리 인하 등 금융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현재 약 140개 업체가 참여해 2만4000여 가맹점이 비용 절감 혜택을 보고 있다. 넛지(nudge)는 부드러운 개입을 통해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것을 뜻한다. 착한 임대인과 착한 프랜차이즈는 모두 강제적 규정 대신 옆구리를 슬쩍 찔러 자발적 참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넛지 효과로 볼 수 있겠다. 한국은 지금 이 경제학 용어의 거대한 실험장이 됐다.

착한 소비자 운동은 주변의 식당 카페 미용실 등에 장차 쓸 돈을 미리 결제해서 자영업자가 불황의 시간을 잘 넘기도록 돕자는 것이다. 3월 중순 한 국회의원이 제안했고 호응을 얻자 정부의 비상경제회의 안건이 됐다. 공공기관부터 3조원 규모의 선결제 선구매를 하겠다면서 민간의 동참을 유도했다. 요즘 기업, 단체, 협회마다 카드를 들고 결제하러 다닌다는 기사가 수시로 올라온다. 4월에는 또 전주시가 ‘해고 없는 도시’ 운동을 시작했다. 시의 고용지원 정책과 기업의 고용유지 노력을 합해 해고를 최대한 막자는 것인데, 전주의 중소기업 9곳이 동참했고 대통령은 또 “전국적 확산”을 호소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제도와 규정과 행정력을 통한 대응은 별로 매끄럽지 못했고 많이 더뎠다. 마스크 공급은 대란을 빚었으며 중앙정부의 재난지원금은 논쟁만 거듭하다 이제야 가닥이 잡혔다. 반면 시민의 자발적 참여에 기댄 여러 시도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조율하듯 순조롭다. 외신들이 높이 평가한 방역만 해도 핵심인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처벌이 이뤄진 건 자가격리 위반 정도였다. 당국은 권고와 호소를 했고, 이를 실천하는 사회 분위기는 시민들이 만들어냈다. ‘이렇게 안 하면 처벌한다’는 으름장보다 ‘이렇게 하면 어때요’ 하는 느슨한 부추김이 더 큰 효과를 보이는 낯선 상황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급기야 10조원 이상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정책에도 넛지 효과가 해결사로 등장했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재정 부담에 가로막히자 고소득층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는 방안이 나와 물꼬를 텄다. 여당이 짜낸 궁여지책이지만, 최근의 흐름을 보면서 어쩌면 이게 더 효율적인 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은 이전과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의 접근법이 딱딱한 법률과 제도를 켜켜이 쌓는 것에서 사회적 연대에 기초한 부드러운 개입과 느슨한 부추김으로 바뀐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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