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에 선교사가 됐다. 24세에 중생하고 기도원에서 3년 동안 말씀과 기도의 강한 영성 훈련(spiritual training)을 받았다. 27세에 피 끓는 청년으로서 영국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선교의 현장에서 선교사로서 강한 실제 훈련(field training)을 받았다. 영국에서 야전의 혹독한 훈련을 받은 뒤 미국 선교사로 파송 받았다.
미국에서도 3년 반 동안 한국 사람 한 명 보지 못하고 미국인 교회에서 사역했다. 미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미국교회 순회집회를 수없이 다녔다. 20대 청년 시절, 영혼 구원을 위한 복음의 열정과 받은 소명 하나로 몸으로 뛰면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마음 한구석이 텅텅 비어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 스스로 지은 말로 ‘영적인 배터리 방전 현상’(spiritual dead battery syndrome)을 심하게 겪기 시작했다.
그것을 극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파송은 해 놓고 아무도 나를 지속적으로 케어하고 교육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40여년 전 한국 교회의 현실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교단 소속이나 대형교회의 파송 선교사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선교사가 내가 20대 때 겪었던 ‘영적인 배터리 방전 현상’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소속 없는 다수의 선교사는 오늘도 사명과 열정 하나로 뛰고 있다.
23년 전 세계전문인선교회(PGM, Professionals for Global Missions)가 주님이 주신 비전대로 세워졌다. PGM은 전 세계에 흩어져 세워진 디아스포라 한인 지역교회에 들어가 지역교회에서 평신도들이 선교사로 태어나고 양육 받고 훈련받아 선교사로 계속 파송하게 하는 사역에 집중해 왔다.
그와 동시에 지난 23년간 내가 PGM 선교회를 통해 전심을 다해온 것이 바로 ‘고아’같이 방치된 소속 없는 선교사들을 품는 일이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선교지를 직접 다니면서 파송교회나 교단의 배경 없이, 훈련도 없이 선교지로 뛰어든 ‘대책 없는 선교사’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20대 때 체험했던 ‘영적 배터리 방전 현상’을 심하게 겪어가며 사역하고 있었다.
PGM은 그때부터 소위 ‘선교사 연장 교육’에 소리 없이 헌신하기 시작했다. ‘외로운 방랑자 선교사 증후군’(lone ranger missionary syndrome)이 있다. 파송 교단이나 파송 선교단체나 파송한 모 교회의 지속적인 돌봄과 영적인 재충전, 연장 교육이 없고 돌봄이 없는 선교사에게 이런 증후군은 어쩌면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이 증후군의 특징이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방향성 없는 선교에 전심을 다한다. 철저히 사역 위주의 선교로 현지인 리더, 사람은 도무지 길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배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선교사 자신도 모른다.
둘째, 그러니 솔직히 복음을 전해 예수님을 믿게 하고 세례를 주는 일이 거의 없다. 평생 한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해보지 못했다는 선교사도 여러 명 만났다. 복음 전파자가 아닌 ‘사업가’가 돼버린 선교사, 능수능란한 비즈니스맨이 된 선교사가 너무 많다.
셋째, 더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이분들은 더욱더 깊은 ‘영적 배터리 방전 신드롬’을 겪으며 채워지지 않는 허탈감을 세속적인 것이나 그냥 열심히 뛰는 사역을 위한 사역으로 채워간다.
주님은 전 세계 선교지를 다니며 ‘선교의 사각지대’(Blind point of Missions)를 보게 하셨다. 그래서 PGM 선교회 회원교회들이 앞장서 선교사 재충전, 연장 교육을 정기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전문인 선교사로 사역할 수 있는 선교사들을 권역별로 나눠 재충전, 양육, 훈련을 시작했다. 사역의 방향은 크게 다섯 가지였다.
첫째, 선교사 자녀를 미국으로 초청해 그들에게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돌봤다. 많은 재정이 드는 일이지만, 회원교회가 힘을 합해 선교사 자녀 돌봄을 시작했다. 둘째, 지역교회의 한 목장이 한 선교사를 입양해 사랑으로 한가족처럼 돌보고 소통하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셋째,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등 권역별로 매년 선교사회가 자체적으로 모여 서로를 돌보고 영적 충전을 하도록 했다. 넷째, 국제본부 주관으로 2년마다 권역별로 선교사들의 재충전, 연장 교육을 했다. 다섯째, 4년마다 전문인 선교사 전체가 다 함께 모여 격려하고 영적 재충전을 하기 시작했다.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지만, 지금도 묵묵히 모든 회원교회와 성도들이 가족처럼 사랑으로 품고 기도하며 실천하고 있다.
이제는 선교사 스스로가 자긍심을 갖고 복음 전파와 영혼 구령에 전념한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 선교의 끝이 돼서는 안 된다.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다고 자랑하는 한국선교가 돼서도 안 된다.
선교사 파송은 선교의 끝이 아닌 선교사 재충전으로 계속돼야 한다. ‘영적인 배터리 방전 신드롬’으로 방향을 읽고 표류하는, 난파된 선교사들을 구해내야 한다. 이것이 ‘선교의 제 4물결’이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