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막을 내린 연극 ‘그라운디드’의 무대에 조명이 들어오면 무대에 한 명 뿐이자 모두인 배우 차지연이 등장한다. 갑상선암을 극복한 뒤 처음 돌아온 무대다. 이 모노드라마는 미국 극작가 조지 브랜드의 대표작으로 주인공은 거만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하늘을 ‘블루’라 칭하고 자신의 것이라고 말하는 주인공은 사실 그럴만하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 공군에는 766명의 여성 조종사가 있다. 숫자만 보면 적지 않지만 전체 1만2349명의 조종사들 가운데 고작 6.2%다. 차지연이 연기한 조종사는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블루’ 속으로 날아들어가는 자유를 누리는 인물이다. 하지만 전투기 조종사는 미래에 가장 먼저 사라질 직업군으로 꼽힌다. 전투기 조종사가 추락하면 인명 피해는 물론 전투기 비용, 조종사 교육비용 등 막대한 돈이 투입된 것이 무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미 실제 전투에 무선조종을 통한 드론이 투입되고 있다.
중동지방에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던 주인공은 예기치 않은 임신, 결혼, 출산으로 지상직에 배치된다. 비행에 대한 그리움이 극에 달한 그는 조종사로 복귀하지만 회색 방에서 회색 모니터를 응시하며 드론을 조종하는 일이 주어진다. 자신이 비행하지 않는 동안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주인공은 이를 임신에 대한 징벌이라고 받아들인다.
전쟁터에서 멀리 떨어진 라스베가스 인근 기지에서 원격으로 중동의 적군을 제거하고 감시하는 일은 그의 정신을 좀먹어들어간다. 자신이 적군을 감시하듯 자신도 감시당할 거라는 강박에 시달리던 그는 마침내 딸마저 모니터 속의 사람들과 혼동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모니터 속에서 공격당하는 어린 아이를 딸이라고 믿은 그는 드론의 방향을 꺽는다. 그런 그에게 딸이 적군의 이인자와 함께 죽는 모습이 들어온다. 이후 정신병동에 갇힌 그가 푸른 하늘을 꿈꾸며 딸의 복수를 맹세하는 것으로 공연은 막을 내린다.
2013년 여름 미국에서 초연된 연극 ‘그라운디드’는 여성 배우들과 연출가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2015년에는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 주연으로 뮤지컬 ‘라이언킹’ 연출가인 줄리 테이머가 연출을 맡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돼 전석매진을 기록했다. 이 작품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해서웨이는 작품의 영화화도 추진중이다. 그리고 2018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뮤지컬 ‘펀 홈’으로 토니상 작곡상을 받은 지닌 테소리에게 오페라 작곡을 위촉했다.
코로나로 대부분의 공연이 멎기 전, 이 작품은 19개국에서 14개의 언어로 무려 150개가 넘는 프러덕션에 의해 상연됐다. 그 매력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여성이 주연인 작품이 확연하게 적고 성적인 대상으로 소모되지 않는 배역이 생각보다 많지 않은 현실에서, ‘온전한 배역’을 연기할 기회에 대한 목마름은 대체로 남녀 배역을 뒤바꾸는 젠더밴딩 캐스팅을 통해 이뤄져 왔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역할을 뒤바꿀 필요 없이 다채로운 겹을 가진 여성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준다. 게다가 그 여성의 모습은 마치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남성이기라도 하듯 마초적이기까지 하다. 영화 ‘커리지 언더 파이어’의 조종사 맥 라이언처럼 남성들의 시각을 통해 완전한 사람으로 재정립 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은 또 직설적인 언어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 쏟아지며 사랑이 아니라 목표를 상실해 미쳐가는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남자 옷을 입을 필요도 없다. 게다가 거대한 감시체계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공포까지 빼곡히 담겨있다.
좋은 작품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연출가의 의도와 방식에 따라 주인공을 실패자로부터 선구자까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일인극인 이상 결국 해석의 중심은 배우의 몫이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여성인 배우가 챙겨갈 몫이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