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즈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어떻게 ‘오페라의 유령’은 유행병에서 살아남았는가?”라는 제목의 6월 1일자 기사로 현재 전세계에서 메이저 뮤지컬로는 거의 유일하게 공연중인 ‘오페라의 유령’ 프러덕션과 서울 블루스퀘어 극장을 심층 취재했다.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 웨버도 거들었다. 그의 수많은 작품이 그동안 한국에서 공연됐지만 한국 방문은 한번도 한 적 없던(반면 일본은 수차례 방문했던) 그는 한국의 극장 방역 시스템을 한껏 치켜세웠다. 나아가서 본인이 소유한 런던 웨스트엔드의 극장들 중 한 곳에 한국 방역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도 말했다. 그의 주선으로 영국 문화부 장관은 한국 문화부 장관과 코로나19 대응 노하우를 공유하는 화상회의를 갖기도 했다.
사실 우리나라 국공립 극장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공연이 중단된 상태다. 극장은 배우, 스태프, 관객이 밀폐된 공간에 모이는 특성상 전염에 취약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로이드 웨버와 같은 민간 극장주 겸 예술가의 생각은 블루스퀘어의 예에서 보듯 무조건 폐쇄만이 답이 아니며 ‘안전한 극장’을 만드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이드 웨버가 주목한 한국의 ‘안전한 극장’이란 무엇일까? 먼저 극장 공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사전에 발열체크를 받고 고열 증상이 있는 경우 입장이 제한된다. 극장 곳곳에 손세정제를 비치해 객석이나 화장실 문을 만질 때 등의 혹시 모를 감염을 예방한다. 그리고 문진표를 작성해서 위험지역에 다녀왔는지의 여부를 기입하고 인적사항과 자리 위치까지도 제출한다. 마지막으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비말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서 관객들이 극장에 들어온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마스크를 착용한다. 다만 지침 중 객석 간 1~2미터 띄어앉기와 지그재그로 앉는 식의 거리두기를 시행하는 것은 한국의 ‘오페라의 유령’도 실시하지 않고 있으며 외국을 포함한 다른 민간 극장에서도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현재까지 극장 관객 사이의 전염 및 확진 케이스는 전무하다. 가정, 종교 활동, 클럽 등 유흥업소, 일터에서의 전염이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지만 극장의 경우 이러한 방역 규칙에만 따른다면 관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
물론 제작사나 관객이나 챙겨야 할 것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문제는 이러한 불편함과 부분적인 개인정보의 노출을 감수하더라도 공연 관람을 통해 얻을 가치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는 공연의 완성도가 마스크를 뛰어넘는 감동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공연의 오랜 중단으로 공연 관람의 경험이 줄어들면서 우리가 ‘공연 없는 세상’에 서서히 적응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온라인 공연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하지만 공연은 공연다워야 한다. 공연의 영상화는 제작자에게 강제할 수도 없고 더더욱 라이브 공연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세계로부터 찬사를 받은 ‘K-방역’이 집에만 머물게 하는 봉쇄령을 내리지 않고 이동을 제한하지 않았듯 극장 자체를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한 극장’을 추구하는 공연장 방역 시스템이야말로 로이드 웨버도 벤치마킹 하려는 답이다.
현재 한국은 메이저 뮤지컬 공연 가운데 ‘오페라의 유령’이 순항중이고 얼마전 ‘드라큘라’가 막을 내렸고 ‘렌트’가 공연을 시작했다. 또 우여곡절 끝에 세종문화회관에서 ‘모차르트’가 개막한 것을 제외하면 국공립 극장에서 뮤지컬 등 공연이 올라가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수도권 방역 강화 조치 이후 국공립 극장은 다시 문을 닫은 상태다. 이에 따라 뮤지컬 ‘아랑가’는 공연이 중단됐으며 ‘귀환’은 개막이 무기한 연기됐다. 우수한 K-뮤지컬들이 ‘극장 K-방역’을 넘어 공연 자체의 우수성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를 기원한다.
조용신 공연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