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전시회 이름부터 마음을 설레게 했다. ‘천하제일 비색청자(天下第一 翡色靑磁) 전’. 송(宋)나라의 태평노인이 ‘수중금(袖中錦)’에서 고려청자는 천하제일의 비색이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2012년 가을 한국에 있을 때였다. 설렘을 가다듬고 천하제일의 비색인 고려청자를 감상하기 위해 대전에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전문가가 아니어서 깊이 감상할 수는 없었으나 수백 개의 비색청자로부터 받은 감동은 분명히 있었다. 그때 전시관을 거닐며 떠올린 것은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이었다.
‘세상의 토기장이도 저런 빛을 빚을 수 있다면 주님께서 빚으신 나의 빛은 어떠할까.’ 하나님은 하나님이 빚으시는 그릇이 모두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 9:21)
오래전 도자기를 굽는 곳을 간 적이 있었다. 토기장이와 진흙의 중요함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 진흙만큼 중요한 것이 ‘뜨거운 불’이라고 했다.
예배는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그릇으로 빚으시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예배에 꼭 필요한 것은 ‘뜨거운 불’이다. 불은 불순물을 제거할 뿐 아니라 그릇 자체를 견고케 하고 그릇의 빛을 아름답게 만든다.
교회의 빛은 설(雪)빛이리라. 설빛이란 ‘하얀 눈’ 빛을 말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사 1:8)
백색은 뜨거운 불의 복음을 통해 만들어진 색깔이다. 하늘 성도들의 하얀색도 불같은 고통을 견딘 자들이 입은 옷 색깔이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그래서 8년 전 마음과 시선을 두었던 ‘천하제일 비색청자’의 생각은 ‘천하제일 백색제자(天下第一 白色弟子)’로까지 확대됐다. 그리고 아예 ‘그 백색제자가 나도 되고 싶다’는 열망에 이르렀다.
나는 불이 없는 예배를 참을 수 없다. 뜨거운 하늘 불이 없는 예배를 어찌 예배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이렇게 힘주어 말하지만 부끄럽게도 그동안 불 없는 예배의 자리에 수없이 있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그런 냉랭한 예배 말이다.
엘리야는 외쳤다. “불로 응답하소서, 불로 응답하소서!” 하나님은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가 쌓은 제단 위에 하늘의 불을 부으셨다. 아무런 불도 붙여지지 않는 예배에 익숙한 성도나 그런 광경을 늘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목사는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외치지 않는다.
온 세상의 교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큰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지금은 부분적인 현장 예배를 드리고 있다. 불 없이 드려지는 예배는 멈춰야 한다. 하나님께 우리의 예배 가운데 불로 응답해 달라고 부르짖어야 한다. 그리하여 다시 회복되는 예배마다 하늘의 불이 임해 더러움은 태워지고 정결함은 타올라야 한다. 마침내 그 하늘의 불은 교회를 ‘천하제일 설빛교회’로, 성도를 ‘천하제일 백색제자’로 빚을 것이다.
김성국 미국 퀸즈장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