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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은 단지 아는 것, 그 아는 것을 말씀 따라 순종하는 것이 믿음

정광재 서울 다메섹교회 목사(왼쪽 다섯 번째)가 지난해 2월 부산영락교회에서 치유집회를 인도하고 있다.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목사는 1980년대 정 목사가 부산 금정구 소년원에서 생활할 때 찾아와 안수기도를 해줬던 목회자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히 11:6)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믿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믿음보다 지식이나 능력 또는 은사에 더 치중하지는 않는가. 혹 많은 말씀 구절을 외우고 성경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쌓는 것을 믿음으로 생각하지는 않는가. 사단은 자꾸 본질을 벗어나도록 우리를 미혹한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은 믿음 위에 일하시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반응할 수 없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얻어지는 선물이다.

우리는 지식, 즉 아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말씀을 듣고 아는 지식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본인은 믿음이라 생각한다. 많은 성도가 예배를 통해 다양한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를 통해 쌓은 성경적 지식은 수준급이다.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믿음인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은 창고에 가득 찬 재고품처럼 머리에 가득차 있을 뿐 정작 삶에서 활용이 어렵다. 머리는 커지는데 가슴은 텅 빈 현상이 발생한다. 믿음은 가슴의 일인데 말이다.

말씀으로 살아 경험된 것이 아닌, 습득된 지식은 능력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지식이 믿음이 되기 위해선 행함이 있어야 한다. 믿음은 행함으로 증명된다. 말씀으로 살아낼 때 믿음은 자란다.

성경을 읽고 지식으로 아는 사람과 직접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과의 차이는 삶과 죽음처럼 그 차이가 크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려움과 힘든 것들을 겪게 하실까. 자신이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아는 것이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씀에 순종하며 직접 겪는 것이 능력으로 나타나 이웃을 섬길 수 있고 또 주님을 참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지식은 아는 것이고, 그 아는 것을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다. 참된 믿음은 성도의 전인격 속에 나타난다.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약 2:17) 지식적으로 알고 있으나 행함으로 옮기지 않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죽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면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깨달았다면 순종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듣기만 하고 깨닫기만 해서 지식적으로 알고만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알기만 하고 생각만 했다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었겠는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는 믿음의 순종을 했기에 아브라함은 비로소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있었다. 배고픈 형제나 자매가 있다면 먹을 것을 친히 주는 것이 믿음이지 ‘저 사람이 배가 고프구나’ 하고 인식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은 참된 이웃에 대한 가르침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셨다.(눅 10:30~37) 강도 만난 사람이 길에 버려져 있었다. 그 옆을 제사장이 피하여 지나갔다. 레위인도 보고 피해서 지나갔다. 하지만 그것을 본 한 사마리아인은 바쁜 와중에 그를 돌볼 뿐 아니라 내 몸같이 최선을 다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고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지나간다. 도와야 한다는 것은 다 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 모두 돕지 못할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마리아인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행함으로 그 긍휼을 나타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나를 우선으로 생각하듯 이웃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늘 나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아니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다.

나의 할 일을 다 하고 남는 시간에 이웃을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웃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이웃 사랑에는 희생이 반드시 따른다. 내가 손해 보고 희생하는 것 없이 나에게 남는 그 무엇으로 하는 것은 참된 이웃 사랑이 아니다.

같은 주님을 섬기면서도 어떤 사람은 능력 있는 삶을 살고 또 어떤 사람은 눌림과 묶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누리고 다스리며 살고 어떤 사람은 아직도 세상 것을 우상으로 섬기며 산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식도 지혜도, 그 어떤 명철함도 아니고 아주 특별한 은혜도 아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말씀에 순종하느냐, 순종하지 않느냐의 차이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도우신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알고 있으나 의지를 드려 순종하지(행함) 않으면 열매는 없다. 머리로 아는 지적 동의는 온전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과 마음, 의지를 모두 주께 드려야 하는데 지·정·의가 온전히 드려지지 않기 때문에 성장과 성숙, 변화와 발전이 없는 것이다. 말씀을 들었으면 또 알고 깨달았다면 작은 것에서부터 순종해야 한다. 순종 없이는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하고 말씀을 알아도 영성은 그 자리에 그칠 수밖에 없다. 말씀을 따라 행함의 믿음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성도가 되자.

▒ 성령께서 인도하는 목회
소년원 집회 도중 “여기 주의 종 될 사람 있다”


1980년 추석 이후 다시 부산 벧엘고아원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녔다.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공부를 지지리도 못하고 싸움하며 말썽만 피우는 말썽꾸러기 아이였다. 학교도 제대로 가지 않았으니 통지표의 교과 성적은 ‘양’ ‘가’로 도배했다.

그렇게 고아원 생활을 하면서 동네 형들과 어울려 다니다가 배가 고파서 빵 하나를 훔쳐먹었다. 그날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는 생활이 시작됐다. 이후 형들과 사고를 치며 돌아다녀 소년법에 따라 여러 가지 보호처분을 받았다.

당시 나는 만 14세 미만이라 소년법 적용을 받아 형사처벌은 받지 않고 보호처분을 받았다. 소년법은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을 소년 보호 사건의 대상으로 했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을 위해 장래의 가능성을 보고 교화와 예방을 위해 제정된 법이다.

소년감별소에 있으면서 보호처분의 종류에 따라 1호 처분을 받아 그냥 나오기도 하고, 5호 처분을 받아 소년원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소년감별소를 가기 전 아버지가 검찰에 가서 검사에게 탄원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적도 있었다.

소년기 추억 중 빠질 수 없는 것은 81년 늦봄부터 시작된 형제복지원 생활이다. 그 끔찍하고 지옥 같던 2년 넘는 생활을 견디고 나와서도 방황의 생활은 계속됐다. 그렇게 방황하며 사고를 치고 부산 금정구에 있는 소년원에서 또다시 들어가 배운 것이 바로 소매치기였다.

소년원을 나와 형들과 5명이 한 팀이 돼 소매치기를 했다. 나는 팔에 큰 점이 있어 점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매치기하는 형들이 수월하게 지갑을 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여 뒤에서 지갑을 털 수 있게 하는 역할이었다.

그렇게 부산의 전통 시장과 서울의 명동을 비롯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매치기를 했다. 그 시절은 성령이 아닌 악한 영의 영향을 받았을 때라 범죄 수준이 날로 발전해서 소매치기 실력도 나날이 늘었다. 그러면서 소년원을 들락날락했다.

소년원에서 아이들과 싸우는 등 말썽을 부렸다. 한번은 싸우는 아이들에게 휩쓸려 난동을 부린 적도 있었다. 벌로 발가벗겨져서 철장에 양손에 수갑을 찬 채로 뿌린 물을 맞았다. 전기봉으로 가혹 행위를 당한 적도 있었다.

84년 여름에는 실형을 받아 김천 소년교도소에서 수감생활까지 했다. 그 당시 인천 소년교도소가 있었는데 그곳은 초범들이 많이 갔다. 김천 소년교도소는 재범들이 많이 가는 곳이었다. 그런데 나는 소년원 전력이 있어 김천 소년교도소까지 간 것이다.

부산 금정구에 있던 소년원에 있을 때 일이다. 어느 토요일 부산영락교회 윤성진 부목사님이 소년원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셨다. 예배 중 부목사님이 말씀을 전하다가 갑자기 “여기서 주의 종이 될 사람이 있다”고 선포하셨다. 재소자들은 그 순간 일제히 나를 가리키며 쳐다봤다. 평소에 내가 신앙이 있는 줄 생각했던 것 같다.

목사님은 나에게 “주의 종이 되고 싶다고 서원 기도를 한 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그 순간 이전에 있던 소년원에서 강화도 기능인선교학교 책자를 보며 ‘아프리카 같은 곳에 가서 헌신하겠다’고 했던 기도가 떠올랐다. 그 당시 김기열 교장님이 이끄는 기능인선교학교는 아프리카 등지에 기능인 선교사를 파송했다. 그때는 그것이 서원 기도인지도 몰랐다.

같이 예배를 드렸던 한 권사님이 나에게 기도를 해 주시라고 목사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부산영락교회 담임목사님이 된 윤 목사님께서 이렇게 안수기도를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훗날 아름답게 써 주시옵소서.” 예배 후 성령 체험을 하며 은혜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순간에도 나를 놓지 않고 붙잡고 계셨다.

정광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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