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가 시작되는 한남대교 남단에서 양재IC까지 도심 구간을 지하화하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교통체증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막대하고 인근 지역은 매연과 소음에 시달리고 또 그걸 막으려는 방음벽이 흉물스레 도시 미관을 해치고 있으니 이를 지하로 넣자는 것이다. 자동차가 없어진 지상을 녹지로 조성하고 공공적인 성격의 건물도 지을 수 있으니 교통이나 도시환경 측면 모두에서 이롭다는 주장이다. 서초구가 관련 학회나 단체에 의뢰해 추산한 공사비는 3조3000억원가량인데 주변 용지에서 받을 수 있는 공공기여금이나 용지 매각으로 최소 5조원은 회수할 수 있으니 예산을 들이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일리가 있는 제안이다.
서울시는 신중하다. 지하도로의 안전성이나 기존 지하시설과의 문제, 공사 기간의 민원 등 들여다볼 문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또 하늘과 경치를 보는 대신에 어두컴컴한 터널을 운전하며 지나야 하는 일반 시민들의 권리 또한 중요하다. 게다가 서울 전역에 지하로 넣어야 할 교통시설이 많은데 유독 이 지역을 개발하면 부동산 가격은 더 불안정해지고 강북과의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 뻔하니 시가 앞장서기에는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정체로 인한 피해는 강북 주민들이 더 심각하다고 할 수도 있다. 강남 주민들이 중간 나들목에서 빠질 수 있는 데 비해 꼼짝없이 도로에 갇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발로 조성되는 공공기여금 등 수익을 강북의 인프라 재생, 예를 들면 철도나 지상철 구간 지하화 등에 사용한다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 청계천 복원이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처럼 공적 목표 아래의 합리적인 추진계획이라면 시점의 문제일 뿐 결국은 성사될 것이다.
다만 미래지향적이며 거시적인 안목을 더할 것을 제안한다. 서초구가 참조로 제시하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M30도로나 미국 보스턴의 빅딕 사업은 도시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모범적인 사례이기는 하다. 상습적인 정체 도로구간을 지하화하고 지상을 녹지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이를 뛰어넘는 프로젝트가 돼야 한다. 첫째, 강남북 또는 서울의 입장보다는 전체적인 국토자원 배분과 연결이라는 광역적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이 구간은 수도권의 심장에 해당한다. 사대문 안과 용산이 전부였던 100년 전 서울의 세종로에 비할 만큼 중요하다.
둘째로, 도로 지하화로 생기는 지상 17만평의 공간은 녹지로 만들기보다는 적극적인 개발을 고려해 볼 만하다.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위한 기반시설이나 창업지원시설과 공공임대 성격의 주거를 함께 공급하는 것도 이상적이며 가능한 일이다. 판교 테크노밸리와 결합하면 서울과 수도권뿐 아니라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전국을 아우르는 혁신의 중심이 될 수도 있겠다. 길고 좁은 대지의 형상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외려 도시적인 형태와 복합용도를 역동적으로 담을 수도 있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셋째로, 단순히 자동차가 달리는 터널보다는 진보된 교통수단을 상상할 수 있다. 이미 미국 서부에서는 하이퍼루프 등이 시험을 마친 단계이며 자기부상이나 기타 첨단 기술을 적용해 새로운 운송시스템으로 차를 실어 나르는 방법도 가능하다. 20세기 방식을 안전하게 따라 하기보다는 전례가 없더라도 혁신과 창의의 공간과 시스템을 적용할 기회이다. 다시 문제는 상상력이다.
어제(7일)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꼭 50년이 된 날이다. 그 사이 1인당 국민소득은 80배 이상 늘었고 이 도로 자동차 통행량은 100배 이상으로 늘었다. 돌이켜보면 산업이나 물류, 부동산뿐 아니라 우리 생활양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일대 사건이었다. 국토라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고 연결하는 문제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첫 펭귄은 정보기술(IT) 산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