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장 35절에는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기록돼 있다. 이 말씀을 통해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일본 작가 다카나가 노부유키는 ‘고독력’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는 고독력을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으로 규정했다. 현대인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현대인은 식당에서 혼자 밥 먹는 걸 힘들어한다. 최근 혼밥이나 혼족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지만 혼자 식사하는 걸 어려워하는 건 사실이다. 혼자 여행하는 것도 두려워한다.
혼자 있는 걸 피하려고 끊임없이 어딘가에 집착하고 의지한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업은 고독을 없애 주는 사업이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SNS 등이 모두 인간의 고독을 퇴치해 주는 사업이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집에 두고 나오면 종일 불안해한다. 어디에서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는 존재가 바로 현대인이다.
파스칼이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기 방에 혼자 조용히 머물러 있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능력이 없다면 행복할 수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 실제 성공한 사람이나 행복을 성취한 사람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혼자 있으면서 창의력과 잠재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 셈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시간 날 때마다 방음 장치가 된 방에 들어가 혼자 있었다고 한다. 독방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있으며 묵상하고 또 묵상했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한 사무실에 20~30명의 직원이 앉아 있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직급이 올라갈수록 주변에 같이 있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다. 최고 경영자가 되면 넓은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게 된다. 개인 집무실이기도 하지만 사실 독방이나 마찬가지다.
무엇을 의미할까. 경영자가 되는 필수 조건 중 하나가 바로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혼자 있으면서도 긍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자기 관리를 하고 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인물이 결국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예술작품이나 과학자의 발명품도 모두 같다. 그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 창조물은 시끄러운 광장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골방에서 혼자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면서 긴 시간 자신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쳐 세상에 없던 창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예수님도 이른 새벽, 홀로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곳을 찾으셨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환호와 갈채를 보내며 따를 때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5000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시자 군중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세우려 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예수님을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시고 자신은 산에 올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셨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건 세상의 부귀영화를 뒤로 물릴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신경쓰지 않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나를 지지하거나 혹은 반대하거나, 세상의 인정과 칭찬과는 관계없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사명만을 따라가고 그것을 완수한다.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한다. 혼자 있으면서도 자기 길을 스스로 걸어야 한다. 혼자 있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혼자 있어도 인간답고 신앙인다워야 한다. 결국, 사명을 품고 이를 성취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야 한다.
조용한 곳에서 홀로 자신만의 길을 그리며 묵상해 보는 건 어떨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