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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 땅끝, 사회 정의·공의 무너진 삶의 현장

호성기 미국 필라안디옥교회 목사가 2002년 9월 미국 필라델피아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9·11테러 추모 1주년 기도회에서 대표기도를 하고 있다.


호성기 목사<세계전문인선교회 국제대표>


Q세대란 ‘조용한 세대(Quiet Generation)’를 말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로 퓰리처상 수상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디지털 시대 삶의 특징을 간파해 한 말이다. 요즘 다수의 젊은이는 대면하고 대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인터넷에 빠져 조용히 사는 경우가 많다.

인류 역사가 예수님이 오신 때를 기점으로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주님의 해)로 나뉜 것 같이 토머스 프리드먼은 또 한 번 인류의 역사가 BC(Before Corona·코로나 이전)와 AC(After Corona·코로나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교육학자로 실용교육의 대가 존 듀이의 제자였던 윌리엄 킬 패트릭은 이미 오래전 TV,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인간관계가 ‘준 사회적 관계’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사람들은 사람과의 대면보다는 반려견 아니면 컴퓨터와 대면하고 대화하며 살아간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로 상징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이렇게 사회적 거리감이 멀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게 8분46초 동안 목을 눌려 사망한 사건이 터졌다. 충격적인 인종차별 사건으로 미국에서 사는 한인 디아스포라 사회도 불똥을 맞았고 약탈 대상이 됐다.

내가 섬기는 미국 필라안디옥교회의 여섯 가정도 약탈을 당했다. 그런데 그 약탈자 중에는 매일 가게를 찾던 단골손님이 있었다. 어제까지 친절하던 손님이 오늘은 강도로 변한 것이다. 이처럼 하루아침에 사회 정의와 공의가 상실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예수님이 선교를 지상 대사명으로 주시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장 먼 곳인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 증인으로 살라고 당부하셨다. 가장 먼 땅끝은 어디일까. 지리적으로 먼 곳일 수도 있으나 바로 사회 정의와 공의가 인간의 탐욕과 시기 질투로 무너져 버린 그곳이다. 바로 오늘 나의 삶의 현장이다.

준 사회적 관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점점 조용한 세대에서 무관심의 세대로 변질돼 가고 있다. 선교는 사랑의 실천이다. 그리고 사랑은 관심이요 개입이요 참여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로 ‘합법적인 핑계’가 생겼다. 안전을 핑계로 일체 남의 일에 관심과 개입도 없다. 용서와 화해로 더불어 사는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는 뒷자리로 밀려버렸다. 대표적인 영역은 어디일까.

첫째는 인간의 탐욕으로 심각하게 무너져 내려가는, 하나님이 창조해서 선물로 주신 지구 환경의 영역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감당할 길 없는 변종 바이러스의 재앙이 임하는 것도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둘째는 오늘날 우리 눈앞에 드러나는 탐욕과 정욕으로 무너져가는 문화 예술 체육의 영역이다. 셋째는 가장 공의롭고 공정해야 할 신문 방송 미디어의 영역이다. 이곳도 탐욕과 정욕과 시기와 질투로 무너져 내려간다.

넷째는 하나님의 창조질서 자체를 거역하고 탐욕과 정욕으로 살아가는 LGBTQ(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기타 동성애)의 영역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이런 잘못된 반생명 문화에 무참하게 깨지고 있다.

다섯째, 정치 영역이다. 사회적인 영역에 공의와 정의가 임하도록 해야 할 권세를 가진 곳이다. 가장 추악한 인간들의 정욕과 탐심으로 눈에 보일 정도로 무너져 내려가는 곳이다.

보수적인 신앙인은 이런 영역들을 무시해야 하는가.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의 대럴 구더 박사는 선교적인 교회학(missional church)의 대가다. 구더 박사는 이렇게 주장했다.

“선교적인 교회는 절대 개인 영혼 구원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개인 영혼의 구원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가정 직장 사회 나라 공동체에 흘러가 가난한 자 병든 자 눌린 자 핍박받는 자나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자들을 집합적이고 총체적으로 구원하는 사회정의 구현에도 힘써야 한다.” 이것이 복음으로 정의와 공의가 소외된 땅끝을 선교하신 예수님의 선교다.

교회 안의 여섯 가정은 공의와 정의가 없는 이웃 단골에 의해 약탈당했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하는가. 우선은 성도들을 도와야 하지만 본질적으론 그리스도인이 정치의 영역, 땅끝 선교지에 들어가야 한다.

미국 뉴욕 쌍둥이 빌딩이 공의와 정의를 무시한 모슬렘의 테러로 무너진 다음 해부터 필라안디옥교회가 결심한 것이 있다. 모든 성도가 정치의 영역에 참정권을 행사하고 투표를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정치 영역에 들어가 공의롭고 정의로운 정치인을 세우는 데 힘을 다해 왔다.

Q세대가 관심도 보이지 않는 이런 영역에 그리스도인은 의도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도록 선교하며 참여해야 한다. 이것이 세계전문인선교회(PGM)가 주장하는 땅끝 선교다.

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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