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생의 한국 최초 기독교 선교사 칼 귀츨라프(사진)는 1832년 여름 19일간 조선의 한 섬에 머무르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훗날 자신의 책에 이곳을 ‘Gan-keang’라고 적었다.
귀츨라프 항해기에 수차례 등장하는 ‘Gan-keang’가 어딘지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순조실록과 일성록, 비변사등록 등 국내 문헌은 귀츨라프가 충청남도 보령 앞바다에 위치한 ‘고대도 안항(安港)’에 정박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귀츨라프가 안항을 왜 ‘Gan-keang’라 했는지에 대해선 설명이 부족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Gan-keang’과 충청남도 보령 원산도의 ‘개갱’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였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열린 제7회 칼 귀츨라프의 날 학술대회에서 ‘Gan-keang’과 안항의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논문이 발표됐다. 15년 넘게 귀츨라프를 연구해 온 오현기(대구동일교회 목사·사진) 박사는 최근 ‘귀츨라프와 고대도’라는 논문을 통해 “Gan-keang는 고대도의 안항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밝혔다.
“Gan-keang은 안항(安港)의 영문 표기”
오 박사는 지난 2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Gan-keang’는 남아 있는 퍼즐 한 조각이었다”며 “왜 귀츨라프는 안항을 ‘Gan-keang’로 표기했을까 수없이 연구한 끝에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오 박사는 해답을 중국 최초 개신교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의 저서에서 찾았다. 모리슨은 귀츨라프를 영국 동인도회사 통상교역지 탐사선 로드애머스트호에 통역관 겸 선의(船醫)로 추천한 인물이다. 중국학 학자기도 했던 그는 1819년과 1822년 ‘영중사전’을 발간했다.
오 박사는 ‘Gan-keang’에 당시 한자어 영어 표기 법칙이 적용됐을 것으로 봤다. 그는 “귀츨라프가 조선인들과 소통할 때 서로 한자로 쓰인 쪽지를 주고받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Gan-keang’는 조선인이 한자로 쓰고 발음한 것을 귀츨라프가 영문으로 옮긴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귀츨라프를 극동으로 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친 모리슨의 책이 떠올라 찾아봤다”고 말했다.
모리슨의 사전에 따르면 안(安·편안 안)자의 경우 ‘GAN’ 또는 ‘AN’으로 표기돼 있다. 항(港·항구 항)자의 경우는 ‘KEANG’로 표기돼 있다. 오 박사는 “이 사전에 나타난 알파벳 표기법에 따르면 ‘Gan-keang’는 곧 안항의 영문 표기임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 박사는 또한 ‘Gan-keang’가 고대도 안항이라는 또 하나의 강력한 증거로 로드애머스트호 선장 린지의 ‘북중국 항해기’에 수록된 비망록(A Memorial for the Inspection of the King)을 들었다. 이 기록은 귀츨라프가 1832년 8월 10일 4명의 조선 고관에게 각각 전달한 ‘조선 왕께 드리는 서신’의 영어번역본이다.
오 박사는 “이 비망록을 보면 ‘관원들에 의해 Gan-keang에 초대받아 들어갔다’는 말이 나온다”며 “귀츨라프가 고관 4명에게 줬다는 편지를 찾아 이 비망록과 대조해보면 ‘Gan-keang’가 어디를 지칭하는지 명확히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척독류함증문서달충집’이란 문헌에서 귀츨라프가 작성한 편지를 찾았다. 비망록과 대조한 결과 ‘Gan-keang’는 안항으로 표기돼 있었다.
“고대도는 도서 선교 위한 전초기지”
오 박사는 이번 논문에 1840년 작성된 영국 해군성 수로국의 한반도 지도 1258번도 실었다. 이 지도에 로드애머스트호의 1832년 항로가 표기돼 있기 때문이었다. 로드애머스트호의 항로를 표시하는 점선은 린지가 북중국 항해기에 쓴 대로 외연도가 자리한 군도 사이를 지나 녹도, 불모도에 이어 고대도로 향한다. 오 박사는 “이 영국 지도는 애머스트호의 항로에 원산도가 개입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배제한다”며 “이렇게 고대도 남쪽 끝 안항에 정박하고 19일이 지난 후 서남쪽으로 내려가 제주도로 갔다는 각종 문헌 기록에도 부합된다”고 말했다.
귀츨라프는 이곳에서 중국어로 번역된 성경과 전도서적을 전하고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하게 했다. 주민들에게 감자 재배법을 전파하기도 했는데 이는 감자 전래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기도 하다. 오 박사는 “귀츨라프는 안항을 기점으로 인근 섬들과 육지까지 본격적인 기독교 복음을 전했다”며 “고대도는 근처 도서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였다”고 강조했다.
물론 오 박사의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원산도의 귀츨라프 발자취’의 저자 신호철 장로는 “귀츨라프가 고대도에 정박했을 수는 있으나 선교활동 지역은 원산도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지리적, 사회적 조건에서 고대도가 선교지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신 장로는 “여러 기록에 따르면 귀츨라프가 선교활동을 펼친 곳은 만과 바람막이가 있는 1급 항구가 있어야 한다. 또한 관청이 있어 관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소와 염소를 기를 만한 들판이 있어야 한다”면서 “고대도는 이런 조건에 불합치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