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사흘 논란’이 있었다. 정부가 8월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15, 16, 17일까지 ‘3일간’ 연휴가 주어진다는 뉴스가 발단이었다. 많은 기사가 3일을 사흘로 표기했는데 일부 네티즌이 문제로 삼고 나섰다. 1일은 하루고 2일은 이틀인데 왜 3일이 사흘이냐는 것이다. 사흘이 4일과 음이 비슷하다 보니 사흘이 4일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3일은 사흘이 맞다. 4일은 나흘이다. 그건 순우리말로 날짜를 셀 때 정해진 규칙이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았다면 당연히 알고 있을 내용이다. 혹시 헷갈리거나 몰랐다면 이번에 알면 될 일이다. 그런데 온라인 세상에서 던져진 댓글 양상은 낯설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왜 3일 연휴인데 사흘로 썼냐’ ‘토일월 1일 추가인데 왜 사흘이냐’ ‘15~17일이 사흘로 계산되냐 똑바로 계산 안 할래’ ‘토일월 휴일인데 왜 제목이 사흘 휴일임?’ 등 실체적 사실과 상관없이 자신이 무조건 맞는다는 식의 반응이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해프닝으로 넘기기엔 뒷맛이 씁쓸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문자를 멀리하는 최근 경향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블로그로 정보를 찾기 시작할 때부터 나타났던 ‘3줄로 요약해주세요’란 요구가 유튜브 시대 들어 극대화하는 분위기다. 길게는 수십분짜리 영상을 다 보기 귀찮으니 핵심 내용만 3줄로 줄여서 알려 달라는 것이다. 심지어 학교에 제출할 독후감 숙제를 3줄로 요약해 달라고도 한다. 어느새 문자를 통해 지식을 습득하고 현상을 읽는 건 귀찮은 행위가 돼 버렸다. 글보다 영상이 훨씬 직관적이고 쉽다는 것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 ‘성인문해교육 현황’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성인 10명 중 2명(22.4%)은 문해력이 떨어져 일상생활이나 경제활동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글을 모르진 않지만, 글을 해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실질 문맹’인 것이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실질 문맹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자를 가진 자를 중심으로 권력이 형성됐다. 필서로 책을 만들던 시절에는 권력자가 문자를 독점했다. 정보 격차는 곧 힘의 차이로 귀결됐다. 서양에서는 15세기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통해 대량 인쇄 시대를 열었고, 이는 중세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권력의 형태는 왕권제를 지나 20세기 민주주의까지 진전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보의 양이 차고 넘치는 요즘은 문자를 멀리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퇴행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생긴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는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BLM)’는 말이 등장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모든 생명은 중요하다(All Lives Matter·ALM)’는 용어도 등장했다. 후자가 더 큰 의미를 가진 듯하지만, 그 안에는 BLM 운동을 희석하려는 정치적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고 보는 게 보편적이다. 몇몇 미국 연예인들은 이 행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ALM 해시태그를 걸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최근 정치권에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논란이 되면 언론을 탓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도 ‘사흘 논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사실관계를 찬찬히 뜯어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노력보다 내 편에서 던지는 ‘듣고 싶은’ 메시지만 비판 없이 수용하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권력이 국민 무서운지 알고 안하무인 격으로 군림하지 않게 하려면 그들의 말과 행동을 엄격하게 따져보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김준엽 온라인뉴스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