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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 마비 극복, 불굴의 피아노 거장

사진=EPA연합뉴스


‘왼손의 피아니스트’로 불린 미국 피아노계 거장 레온 플라이셔(사진)가 2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플라이셔가 미국 볼티모어의 요양시설에서 별세했다고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작곡가인 아들 줄리안 플라이셔가 발표한 고인의 사인은 암이었다.

고인은 피아니스트에게 생명과도 같은 오른손이 갑자기 마비됐지만 30년 넘게 왼손으로 피아노를 치며 세계 무대를 누빈 불굴의 주인공이었다. 아흔의 나이에도 연주자, 지휘자, 교육자로 활약했다. 앞서 피바디·커티스 음악원, 토론토 왕립 음악원 등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그는 한국의 신수정 이대욱 강충모 등의 스승이기도 하다.

고인은 16세인 1944년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리고 24세인 52년 권위 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미국인 최초 우승을 차지하며 각광을 받았다. 이후 플라이셔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를 지낸 조지 셸과 함께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집 등 지금도 회자하는 여러 명반을 남겼다.

하지만 전성기를 구가하던 37세에 근육긴장이상증이라는 병이 찾아왔다. 오른손 네 번째, 다섯 번째 손가락이 마비되면서 고인은 피아니스트로서 큰 위기를 맞았다. 병세가 심해질수록 그의 손가락은 손바닥 안으로 둘둘 말려 들어갔다. 그러나 고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왼손 연주용 레퍼토리를 개발해 무대에 올랐다. 70년대에 들어서는 지휘에도 도전해 미국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을 객원 지휘했다.

고인은 90년대 중반부터 근육 마사지 요법과 보톡스 주사를 병행한 재활치료로 오른손이 점차 회복되자 2000년대 초반 다시 양손 연주에 나섰다. 2004년 발표한 40년 만의 양손 연주 음반 ‘투 핸즈(Two Hands)’는 클래식 음반으로는 드물게 미국에서만 10만장 넘는 판매량을 올렸다.

고인은 2005년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재개관을 기념해 첫 내한 무대를 가졌다. 당시 바흐, 브람스, 슈베르트 등의 작품을 왼손 연주와 양손 연주로 함께 펼쳐 보여 박수갈채를 받았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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