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설 연휴를 앞두고 국내에 상륙한 코로나19가 추석을 한 달여 앞두고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삐져나오긴 했지만 고만고만한 흐름을 보이던 국내 신규 확진자 수 그래프는 이달 들어 갈수록 뾰족해지고 있다. 27일엔 급기야 400명을 넘어섰다. 7개월을 보내는 동안 코로나 이전 일상은 희미해졌다. 마스크는 아가미처럼 모두의 입 주위에 붙었고,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먼 과거의 일이 됐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확진자 알림은 무심한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그간 백신이 나오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종식될 것이란 기대는 임상시험 소식에 귀 기울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최근엔 백신이 나와도 팬데믹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전망 역시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에서 백신을 연구 중인 문성실 박사는 지난달 나온 책 ‘여기가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 중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기’에서 “코로나와 우리는 ‘끝’이 아닌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 잡지 ‘애틀랜틱’의 과학 저널리스트 에드 용을 인용해 “코로나19와 두더지 게임을 하게 될 것”이란 전망도 했다.
받아들이기 싫지만 이제는 정말 코로나19와의 장기전을 대비해야 하는 상황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이달 출간된 빅터 프랭클의 책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는 코로나19와의 장기전에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나치 ‘죽음의 수용소’와 코로나19 상황을 단순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시사점은 얻을 수 있다. 프랭클은 아우슈비츠나 다하우의 수감자들이 몰락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으로 “내적인 버팀목이 없어졌을 때”라고 말했다. ‘곧 전쟁이 끝난다’ ‘6주만 지나면 다시 집에 갈 수 있다’ 같은 희망고문이 실현되지 않을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무너지고 곧이어 육체적으로도 무너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꿈에서 전쟁이 3월 30일 끝난다는 예언을 들었던 같은 막사의 노인을 예로 들었다. 그 노인은 예언 날짜가 다가와도 종전의 희망이 보이지 않자 예언 날짜 이튿날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백신이나 치료제 소식에 일희일비하는 조급함을 버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건 주위에 대한 배려다. 이는 그간 우리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처 경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정 집단, 특정인에 대한 비난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할 공산이 크다. 최근 일본 상황은 우리가 맞닥뜨리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다. 지난 25일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은 초·중·고교생에게 “누구나 감염자가 될 수 있다”며 “감염자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2학기 개학에 앞서 코로나19 감염자와 소속 학교에 도를 넘은 비방이 잇따르자 자제를 당부한 것이다. 실제 시마네현 마쓰에시의 한 고등학교에는 감염자가 나온 이후 “일본을 떠나라”며 학생과 학교를 비난하는 전화가 쇄도했다. 감염자가 나온 다른 학교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21일에는 한 비영리법인이 초·중·고 교사 1203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89%가 ‘이지메(집단 괴롭힘)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는 결과를 전했다.
문 박사는 앞의 글에서 “오며가며 연구에 대해서 대화하던 그런 일상이 사라져버렸다”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그를 통해 적응하면서 대응하는 인류의 모습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마스크를 쓰고 실험실 내에 거리를 두고 시간표와 동선을 짜서 서로가 연구하는 데 불편함이 없게, 우리는 이렇게 함께 과학하는 방법을 배우고 우리의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주위와 함께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 것이다.
김현길 문화스포츠레저부 차장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