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이 1주일 넘게 계속되고 있다. 동네 개원의도 일부 문을 닫았지만 코로나19 와중에 불붙은 의사 파업의 핵심동력은 20대 전공의다. 정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 합의안을 퇴짜 놓은 것도, 의대 교수 릴레이 성명을 끌어낸 것도 전공의였다. 물리력도 전공의로부터 나왔다. 165개 수련병원 전공의 8800여명 중 6000명 안팎이 가운을 벗으면서 상급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응급실, 중환자실 등에는 비상이 걸렸다. 외래 환자가 밀리는 건 당연했다. 암수술이 미뤄지고 항암치료까지 줄줄이 늦춰졌다. 응급환자가 병원을 찾아 헤매다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망 사고도 일어났다. 주 80시간의 살인적 노동을 갈아 넣어 대한민국 최상위 의료기관을 받쳐온 청년 엘리트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꽤 불행한 방식으로 확인받는 중이다.
의사가 일을 멈출 때 벌어지는 일은 대부분 불가역적이다. 돌이킬 수 없으니 집단행동에는 남다른 책임감이 따른다. 그렇다고 말할 권리가 사라질까. 의사 역시 그들의 희망과 요구, 이익을 관철할 권리가 있다. 정부 정책이 잘못됐는데 대화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면 가진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한다. 대가는 비쌀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분쟁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파업의 순기능을 믿는다. 연장선에서 전공의 파업도 반대하지 않는다. 의사가 어떻게 환자를 볼모로 싸우냐고? 더 잘하기 위해 그럴 수 있다고 본다. 내가 반대하는 건 파업이 아니다. 그들의 주장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의협이 내세운 4대 악 의료정책 중 논란의 핵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 의대 설립 두 가지다. 10년간 한시적으로 의대 정원을 총 4000명(지역의사 3000명, 역학조사관·중증외상·기초과학 등 1000명) 늘리고 공공 의대(정원 49명)를 설립한다는 구상이다. 명분은 의사 수의 절대적 부족이다.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65.7%, 인구 10만명당 의대 졸업자 수는 58%에 불과하다. 숫자와 기준을 두고 논쟁이 있는 건 안다. 그러나 어떤 데이터를 들이대도 의사는 부족하다. 소수정예로 최대 효율을 내온 제도가 있고, 그걸 지탱해온 인적 희생이 부족분을 가려왔을 뿐이다. 물론 나아지자고 한 선택이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원을 늘리면 효율이란 장점까지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의사가 충분하다고 말한다면 그건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일이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①한국의 면적 대비 의사밀도가 높고 ②의사 수 증가율도 높으며 ③인구가 감소하니 의사 수는 부족하지 않다고 반박한다. OECD 인구밀도 1위인 대한민국에서 ‘국토면적 대비 의사밀도가 높다’는 걸 의사 수가 충분한 증거로 내밀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의사 증가율 역시 지난 몇 년간 꾸준히 낮아졌고, 인구는 줄어들지만 고령화로 의료수요는 급증하고 있으니 반박근거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의료계가 계속 이런 주장에 머문다면 그들의 파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의사는 부족하다. 지역별·진료과목별로 편차가 심하고 기관별 서비스 질도 격차가 크다. 물론 의사를 늘린다고 문제가 저절로 풀릴 리는 없다. 수가는 꼬여 있고, 지방 환자들은 점점 더 서울로만 모이는데, 충원된 지방 인력을 받아줄 지역의 공공의료 인프라는 엉망이다. 그러나 해법을 찾자면 일단 의사가 부족하다는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그게 첫걸음이다.
지역의 한 의사는 이렇게 호소했다. “대부분 의사의 합리적인 사고 프로세스로는 증원의 필요성을 수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대 증원이 뇌관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이렇게 말하면 진짜 대화는 시작될 수 있다. 좋은 증원은 어떤 걸까. 무엇을 함께 풀어야 좋은 증원을 할까. 지난 십수년 의료계가 해온 고민 아닌가.
이영미 온라인뉴스부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