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지난 2일(현지시간) 개막한 제77회 베니스 영화제에는 한국 영화 1편이 초청됐다. 비경쟁부문의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이다. 조직의 표적이 된 한 남자의 기구한 삶을 그린 이 작품에 대해 알베르토 바르베라 집행위원장은 “최근 몇 년간 한국 영화계에서 나온 가장 뛰어난 갱스터 영화 중 하나”라고 치켜세웠다. 미 연예매체 할리우드 리포트는 “누아르 팬들을 겨냥한 작품으로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엿보인다”고 호평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영화계가 전례 없는 침체를 겪고 있지만, 한국 영화에 관한 관심만큼은 불붙고 있다. 오랜 시간 해외의 러브콜을 받았던 봉준호·박찬욱·이창동·홍상수 등 한국 대표 감독들만이 아니라 신인·중견 감독들의 잇따른 해외 진출 낭보가 날아드는 중이다. 아카데미를 석권한 ‘기생충’, 코로나19에도 세계 영화계를 이끈 ‘반도’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K무비에 대한 높은 관심이 반영된 현상으로 풀이된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신인 여성 감독들의 활약이다. 지난달 개봉한 윤단비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남매의 여름밤’은 스페인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 밴쿠버국제영화제 등에 진출했다.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린 이 영화는 앞서 미국 뉴욕아시안영화제와 내슈빌영화제, 스위스 취리히영화제, 폴란드 뉴호라이즌 국제영화제 등에도 초청받았다.
특히 산세바스티안영화제 펄락 부문은 현지 미개봉 작품 중 올해 최고의 장편을 상영하는 섹션으로 지난해 ‘기생충’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감독 셀린 시아마) 등 굵직한 작품들이 초청된 바 있다. 올해는 ‘남매의 여름밤’이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선정됐다.
지난달 개봉한 ‘69’세도 오는 10일 개막하는 중국 더 원 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된 데 이어 이스라엘 하이파국제영화제, 터키 국제죄와벌영화제 등에서 상영된다. ‘69세’도 임선애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성폭행당한 69세 노인 효정의 결심과 발걸음을 좇는 작품으로 배우 예수정과 기주봉 등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했다.
‘낙원의 밤’을 비롯한 장르물의 약진도 시선을 끈다. 윤재근 감독의 신작 ‘유체이탈자’는 스페인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1968년 시작된 시체스 판타스틱영화제는 공상과학(SF), 공포, 애니메이션 등 여러 장르물을 아우르는 세계적 권위의 영화제로 꼽힌다. 배우 윤계상이 주연을 맡은 ‘유체이탈자’는 기억을 잃은 채 12시간마다 몸이 바뀌는 남자를 소재로 한 액션물이다. 아울러 9일 국내 개봉하는 웹툰 원작 공포물 ‘기기괴괴 성형수’도 영화제 애니메이션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애니메이션 작품 중에서는 2013년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와 2016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이 이 영화제에 초청돼 최우수애니상을 수상한 바 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