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이 황홀한 풍경을 빚어낸 강원도 태백은 살아서 꿈틀거린다. 백두대간 줄기가 힘차게 뻗어 내려오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으로 갈라지는 분기점인 매봉산 정상(1304m) 부근은 사계절 강한 바람이 불어 ‘바람의 언덕’이라 불린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서 있고, 초록빛 배추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색다른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아래에는 세 개의 물길을 빚어내는 삼수령(三水嶺)이 자리한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에는 백두대간임을 알리는 바위 표석이 있다. 이곳에 서면 강한 바람 덕분에 풍경이 시시각각 변한다. 구름 몇 점 없이 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가 하면 구름이 능선을 타 넘으면서 온통 운무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여 주지 않는 때도 있다. 삽시간에 운무가 걷히면서 풍력발전기와 주변의 산자락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기도 한다.
압권은 아침 노을이나 햇살이 퍼질 때 붉게 물드는 배추밭의 구릉과 그 뒤로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에 고인 구름이 출렁이는 모습이다. 이른 아침 매봉산 아래로 장관을 이루는 운해를 보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맑은 날에는 머리 위로 올려다보는 하늘이 아닌 눈앞에 광활히 펼쳐지는 하늘과 평원을 마주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답답한 마음이 상쾌해진다.
거대한 풍력발전기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쉭, 쉭’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풍력발전기 아래 서면 소리만 들어도 시원하다. 여름철 초록빛 융단처럼 깔려 있던 배추는 대부분 출하됐다.
바람의 언덕 올라가는 입구에 삼수령이 있다. ‘세 개의 강물이 갈라진다’는 뜻을 가진 고개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남하하며 뻗어가던 백두대간이 살짝 우회전하면서 한강의 첫 물줄기를 빚어내고, 왼쪽으로 형성된 낙동정맥의 동쪽은 낙동강의 발원 연못인 황지(黃池)를 거쳐 낙동강으로 이어진다. 서쪽은 삼척 일대를 휘감아 돌다 동해로 빠져나가는 오십천을 빚어냈다.
태백에는 ‘바람의 언덕’과 비슷한 풍경을 갖고 있는 곳이 또 있다. 해발 1000m에 자리한 전형적인 산촌 귀네미마을(하사미동)이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소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우이령이라 불렀다가 귀네미마을로 불리고 있다. 이곳에도 배추밭 위로 풍력발전기 날개가 바람을 가르고 있다.
태백에는 ‘높이’를 자랑하는 곳이 또 있다. 해발 855m 고지에 위치한 추전역(杻田驛)이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기차역이다. ‘추전’은 싸리나무밭 또는 싸리나무골을 뜻한다. 추전역은 1973년 태백선을 건설하면서 탄생했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에서 시작한 물길은 황지천을 따라가다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깊은 소를 이룬다. 약 1억5000만년에서 3억년 전 사이에 형성된 구문소(求門沼)다. 구문소는 구무소의 한자 표기다. 구무는 구멍·굴의 고어이다. 높이 20~30m, 넓이 30㎡ 정도 되는 커다란 기암절벽과 주위의 낙락장송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폭포, 용천 등 구문팔경을 볼 수 있다.
구문소에는 3가지 형성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논에서 커다란 싸리나무가 떠내려 와 부딪혀 뚫렸다거나 황지천의 백룡과 철암천의 청룡이 낙동강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다 백룡이 청룡을 기습하기 위해 뚫었다고도 한다. 중국 하나라 우왕이 단군에게 치수를 배울 때 칼로 뚫어 생긴 곳이라고도 전한다.
■ 여행메모
양념 닭고기에 육수 ‘물닭갈비’ 별미
안전체험 테마파크 ‘365세이프타운’
수도권에서 강원도 태백으로 가려면 영동고속도와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제천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이후 38번 국도를 따라 영월·정선을 지난다. 태백 화전사거리에서 좌회전해 35번 국도(백두대간로) 들어서면 삼수령이 지척이다. 이곳에 매봉산 바람의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태백의 대표 먹거리는 물닭갈비다. 전골처럼 국물이 있는 태백닭갈비다. 양념한 닭고기에 육수를 부어 끓인다. 기름기가 적고 맛이 담백하다. 연탄과 숯불에 구워 먹는 태백 한우 갈빗살도 유명하다.
태백에는 세계 최초 안전체험 테마파크인 365세이프타운이 있다. 안전을 주제로 교육과 놀이시설을 융합한 에듀테인먼트시설이다.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휴관중이며 22일 재개관 예정이다.
태백=글·사진 남호철 여행전문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