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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신웅 (1) 간질병 총각과 결혼할래요… “미쳤냐, 꽃다운 나이에”

수의사로 재직하며 38년간 청송교도소 재소자들을 돌봐온 경북 청송 진보교회 김신웅 원로장로(왼쪽)와 박혜심 권사 부부가 2019년 마산의 한 공원에서 포즈를 취했다.


경북 청도의 부잣집에 믿음 좋은 18세 처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옆집에서 혼례식이 열렸다. 담을 하나 사이에 두고 이웃집에 살던 처녀는 담장 너머 혼례식을 구경했다. 주례자가 “신랑 입장!”을 외치자 30살의 신랑은 예복을 입은 채 하객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신랑의 외모는 모든 하객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씩씩하게 걸어오던 신랑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거품을 문 채 ‘꽈당’ 넘어져 버렸다. 신랑이 될 사람은 당시 ‘간질병’으로 불리던 뇌전증 환자였다. “속았다”는 소리와 함께 “빨리 끌어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랑이 될 뻔했던 그 남자는 친구들에게 업혀 동네 밖으로 사라졌다.

하객들은 마치 못 볼 걸 본 것처럼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신부 측 부모는 신랑 측 어머니에게 “어떻게 이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담 너머로 혼례식을 구경하던 처녀 역시 충격이 컸지만, 불현듯 이런 결심을 했다. “간질병으로 소문난 저 노총각이랑 결혼할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을 테지, 내가 아니면 저 사람은 절대로 결혼할 수 없을 게 분명해. 평생 보살피고 사랑해줘야겠다. 저 총각이랑 결혼해야겠어!”

처녀는 개성 마씨 양반집 가문의 부잣집 처녀였다. 그 남자는 유복자로 태어나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서 산양 서너 마리의 젖을 짜 겨우 생업을 이끌어가는 가난하고 초라한 청상과부의 외아들이었다.

결혼을 결심한 처녀는 부모에게 자기 생각을 말씀드렸다. 딸의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미쳤냐. 꽃다운 18세 나이에 어디 열두 살이나 연상인 지랄병 환자에게 시집을 가겠단 말이냐”라며 어르고 달래다 협박까지 해봤지만, 처녀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그 처녀에게 강하게 엄습한 것이다. 마침내 딸은 간질병 환자인 그 노총각과 결혼을 했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실제 이야기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머니의 긍휼이 아들인 내게 그대로 전수된 것이라고 말이다. 부족한 내게 사람들은 ‘청송의 천사’ 혹은 ‘재소자들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내겐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부담스러운 별명이다. 하지만 부족한 내가 수십 년간 감호소의 죄수들을 위해 살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긍휼의 은사가 조금이나마 전이돼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 어머니는 정말 긍휼의 여인이었다. 아버지에게뿐 아니라 만나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긍휼을 몸소 선보이다 가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귀한 신앙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존중히 여겨질 일이 있다면 어머니 덕분이다. 어머니의 신앙과 성품은 자식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내가 바로 그 증인이다.

약력=1940년 경북 청도 출생, 경북대 수의학과 졸업. 청송제1감호소 교화위원, 청송제2감호소 종교위원, 청송교도소 교화위원, 대구보호관찰소 보호위원, 대구지검 범죄예방위원 역임. 교정대상 및 국민훈장목련장 수상. 현 청송제3감호소 교화위원.

정리=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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