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이후 장·노년층에 흔하지만 근시 많은 동양인 10·20대도 증가
즉시 수술 않으면 실명할 수도… 스마트폰 많이 보는 10대도 위험
눈 마구 비벼도 발병 각별 주의 필요
중학생 김영철군(가명·14)은 시력이 나쁜 편이다. 오른쪽과 왼쪽 눈 시력이 각각 -8디옵터, -9디옵터로 고도근시 기준(-6디옵터)을 넘는다. 안경을 벗으면 눈 앞 사물 구분이 쉽지 않다. 얼마 전 컴퓨터를 하다가 갑자기 오른쪽 시야 윗부분이 흐려지고 잘 보이지 않았다. 동네안과에선 ‘망막 박리’가 의심되니 빨리 큰 병원에 가 보라고 권했다. 대학병원 검사에서 망막의 3분의 1정도가 떨어져 나왔고 눈 중심부까지 침범 직전이란 진단을 받았다. 곧바로 응급수술을 받아 다행히 정상 눈을 되찾은 김군은 “병명이 무서워 앞을 완전 못보는 건 아닌가 걱정했다”고 말했다.
‘근시’ 소아·청소년 눈 건강 경고등
김군을 불안에 떨게 한 ‘망막 박리’는 50대 이후 장·노년층에 흔히 발생한다. 60·70대 발병률이 높다. 나이 들수록 우리 눈(안구)의 형태를 유지하는 ‘유리체’의 노화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젤리 같은 투명한 섬유질로 구성된 유리체는 점점 액화(젤리 형태가 물로 변하는 현상)돼 찌그러지면서 안구 뒷벽에 벽지처럼 붙어있는 망막 조직을 함께 잡아당겨 벽에서 떨어지게 하는데 심하면 망막에 구멍(열공)이 뚫릴 수 있다.
망막은 눈을 통해 들어온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으로 카메라의 필름에 해당된다. 망막 박리를 즉시 수술하지 않고 방치하면 안구가 위축되거나 실명에 이를 수 있다. 국내에선 이런 망막 박리 환자가 연간 5000명 정도 발생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인의 경우 10대에서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도 망막 박리가 자주 일어나는데, 가장 중요한 원인이 근시라는 사실이 최근 연구에서 밝혀졌다. 분당서울대병원 안과 우세준 교수팀은 2003~2018년 망막 박리로 응급수술을 받은 1599명을 대상으로 나이별 근시 정도를 분석한 결과를 국제 학술지(Biomed Research International)에 발표했다. 연구를 통해 50대 미만에서는 근시가 망막 박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석에 따르면 20대와 50대의 망막 박리 발병률이 다른 연령대 보다 높은 ‘양봉형’ 양상을 보였다. 50세 미만 망막 박리 환자들에서는 고도근시 비율이 50~60%, 근시 비율은 90%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반면 50세 이상에서는 고도근시 비율이 10% 이하, 근시 비율은 20~30%로 젊은 연령대와 크게 차이났다.
안구가 길어져 생기는 근시는 가까운 곳을 잘 보지 못한다. 국내 소아·청소년의 64.6%가 근시(경도 40.2%, 중등도 19%, 고도 5.4%)라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로 흔하다. 안구 길이가 26㎜이상일 때 고도근시, 24㎜ 이상 26㎜ 미만일 때 경도 및 중등도 근시, 24㎜미만 일 때 정시 및 원시에 해당된다.
우 교수는 5일 “이번 연구결과는 고도근시로 인해 유리체 액화와 수축이 보다 일찍 나타나 이른 나이에도 망막 박리가 유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근시가 아닌 경우에는 유리체 액화가 노화에 의해 일어나며 이로 인한 망막 박리가 50세 이후에 나타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양권에서는 젊은 나이에도 망막 박리가 호발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서양에서는 주로 고령층에서 발생한다. 아시아 국가에는 근시 인구가 많고 결과적으로 근시와 망막 박리의 연관성으로 인해 젊은층에서도 망막 박리 발병률이 높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해 국제학술지 발표 논문을 보면 한국과 중국, 일본인의 망막 박리 발생률은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 50대에서 70대 초반의 두 연령대에서 우뚝 솟은 ‘양봉형’을 보인 반면 네덜란드, 스코틀랜드인의 경우 50~70대에서만 높은 ‘단봉형’ 양상을 보였다.
일주일 안에 수술해야 시력 보전
근시의 원인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종, 환경, 유전적 요인들의 영향을 받는 걸로 알려져 있다. 젊은 나이에 근시가 많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외부활동이 적고 책읽기나 컴퓨터사용 등 근거리 작업이 많은 아이들에서 근시가 더 자주 발생한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거의 하루종일 집안 등 실내에서 보내는 초·중·고생들이 적지 않다. 컴퓨터 게임과 스마트폰 동영상 보기, 공부 등으로 가까운 곳을 주시하는 근거리 작업을 과도하게 하면 5~15세 무렵 근시 진행이 빨라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근시로 인한 망막 박리 위험도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우 교수는 “실제 이번 연구에서 망박 박리로 수술받은 10~14세의 경우 고도근시가 40%, 경도 및 중등도 근시가 3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고도근시가 있다면 10, 20대부터 망막 박리 발생 위험성이나 망막 주변부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검사에서 위험 병변(격자 모양 변성, 망막이 찢어지는 열공 현상)을 발견하면 예방적 레이저 치료를 통해 망막 박리로 이어지는 걸 막을 수 있다.
망막 박리의 첫 증상은 흔히 ‘날파리증’으로 불리는 비문증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망막이 찢어져 생긴 구멍(열공)을 통해 혈액 또는 망막세포가 안구 내로 퍼지며 날파리 같은 물체가 떠다니는 것처럼 느껴진다.
초기부터 시야 장애 또는 시력 저하를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어려서 표현을 잘 못하거나 노인의 경우 치매 등으로 의사소통을 못해 증상을 방치할 수 있다. 수술받지 않으면 100% 시력을 잃는다.
망막 박리가 부분적이고 안구 중심부(황반)를 침범하지 않으면 레이저 치료 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 광범위하게 진행돼 황반부까지 번지면 꼭 수술을 받아야 실명을 막을 수 있다. 망막 박리가 발견되고 가급적 1주일 안에 수술해야 시력을 보전할 수 있다.
우 교수는 “-6디옵터 이상 고도근시라면 10대 때부터 망막 주변부 검사를 받고 경도 및 중등도 근시의 경우 날파리증 증상이 발생하면 가급적 빨리 안과를 찾아 망막 열공이나 박리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망막 박리는 축구 농구 권투 격투기 등 격렬한 스포츠를 즐기다 눈에 충격이 가해지거나 아토피피부염 등 알레르기질환으로 눈을 마구 비벼서도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스포츠 활동을 할 땐 고글을 쓰고 아토피 환자는 눈을 비빌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