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의 비유에 앞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보상을 요구한다. 3년 동안 예수님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했으니 이에 대한 대가를 달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은 보상을 약속하셨다. 그가 받을 보상의 내용은 너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 신자가 받을 보상의 내용과 같기 때문이다.
그 보상은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마 19:28)이라는 내용이다.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가 똑같이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예수님처럼 초자연적 기적을 행하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아는 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거룩한 삶을 의미한다.
그렇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 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보상은 내가 무언가에, 혹은 누군가에 구속 받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정직 온유 겸손 사랑 인내는 신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축복으로 정직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나의 권리가 되었다.
이것이 왜 나의 복이며 권리인가. 이전에는 복을 얻기 위해 도덕과 윤리적인 삶을 살았다. 그것이 복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를 믿은 후로는 달라진 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조건과 형편과 상황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내 인생을 붙들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제는 내가 정직하고 겸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내 인생 전반에 손해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받은 가장 큰 복이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신자에게 주어진 보상이다.
그것에 대한 설명이 ‘포도원의 주인과 일꾼의 비유’이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너희는 포도원 안에 있는 일꾼들이고, 너희를 먹이시고 걱정하는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선포하셨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적인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축복의 선언이고 보상으로 주어진 큰 영광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이 복을 가장 깊이 체험하고 잘 알 방법으로 어떤 것을 사용하시는가. 오늘 본문과 똑같은 내용이 마가복음에도 나온다. 그런데 거기에는 마태복음에 없는 내용이 하나 슬그머니 들어가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버린 자에게 주는 보상의 방법으로 ‘박해’가 언급돼 있다는 점이다.
예수를 믿고 나서 가장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예수를 믿은 후 삶의 내용이 그 이전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똑같은 환경 속에 있고 우리의 성품과 조건도 그대로다. 성령님이 내주하신다고 하는 데도, 완벽하게 보호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어려운 환경 속에 처할 때도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돌보심을 가장 잘 체험할 때가 내 삶 속에 위기와 고난이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칠고 험한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된다. 우리는 갈등이나 시험을 받지 않고는 진정한 사랑 인내 희생 용서를 배우지 못한다. 이를 고난 속에서 연습하고 싸우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다. 그것이 그분의 방법이다.
그 이유로 인해 우리 인생에 실패를 만나거든 좌절하지 말고 안심하라. 이제 내가 한 걸음 더, 하나님과 예수님을 깊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이 일을 하고 계신 것이다. 이것을 믿고 기대하자.
보상은 우리 안에 이미 허락된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허락하신 신자의 인생과 신분이 무엇인지를 확인한다면, 우리의 자랑은 세상 것으로 채울 수 없는 고귀함과 당당함이 될 것이다.
(미국 버지니아 한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