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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자본주의 샤머니즘



올해 상반기 최대 화제작인 ‘더 해빙(The Having)’(이서윤·홍주연, 수오서재)은 ‘가장 빠르게 부자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누구나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누구나 부자가 될 자격을 갖고 태어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30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질 수 있는 운’을 타고났다는 것이다. 부자가 되려면 ‘해빙’을 해야 한다. ‘해빙’이란 가진 돈이 1000원에 불과하더라도 가진 돈에 감사하는 것이다. 해빙하는 법은 돈을 쓸 때 ‘가지고 있다’는 걸 만족하며 느끼는 것이다. 해빙 포인트는 순간에 집중하며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지금 나에게 있다’에 집중하고 기뻐할 줄 알면 더 큰 돈이 스스로 찾아온단다.

출판 시장에서 이런 샤머니즘적 주술은 큰 위기에 직면했을 때마다 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로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됐다.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책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황금가지)다. 저자의 ‘가난한 아빠’는 저명한 교육자로,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이 최고의 성공이라 가르쳤다. 반면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친구의 ‘부자 아빠’는 아홉 살 아이들에게 돈과 투자와 경제의 기본 원리를 알지 못하면 평생을 돈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가르쳤다.

이 책은 엄격하게 말해 샤머니즘적 주술을 담은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았다. 우수한 인재들이 모두 ‘하버드 비즈니스’로 몰려드는 미국 사회에서는 돈을 더럽게 여기는 청교도적 선입견을 타파할 필요가 있었다. ‘돈 벌기가 곧 교양’이라는 새로운 가치관을 담은 이 책은 돈보다 일을 통해 얻어지는 가치를 중요시하고,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던 유교적 가치관의 국가인 한국 중국 일본에서 모두 밀리언셀러가 됐다. 특히 한국은 돈이 없으면 국가도 망할 수 있다는 뼈저린 경험을 한 직후에 출간돼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사람 중에 부자가 된 이는 저자 한 사람뿐이라는 비난을 들어야만 했다.

2007년에 ‘88만원 세대’ 담론이 등장하고, 2008년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엄습했다. 직장과 사회, 나아가 가정의 휘장마저 사라진 개인이 믿을 것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이때부터 ‘셀프 힐링’의 깊은 늪으로 급속하게 빠져들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등장한 책이 ‘시크릿’(론다 번, 살림Biz)이다. 이 책은 2008년까지 출판 시장을 독주하며 200만부 이상 판매됐다. ‘수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자신의 바람이 이뤄지리라 믿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하지만 이 책은 ‘자기최면과 주술을 요구하는 뉴에이지 계열의 서적일 뿐’이다. 이 책은 불교의 선과 같은 동양적 가치관이 어설프게나마 녹아들었기에 큰 인기를 끌었다는 분석도 있다.

세 책은 토종 미국산(‘부자 아빠…’), 동양적 가치관을 수용한 미국산(‘시크릿’), 미국에서 먼저 출간된 한국산(‘더 해빙’)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이제 이런 책을 수입하지 않고 토종의 책을 수출까지 했다는 점에서는 자랑할 만하다. 하지만 간절히 원하면 성공도 할 수 있고 부자도 된다는 가벼운 논리로 현혹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의 책이다. 누군가는 이 책들의 유행을 놓고 ‘자본주의 샤머니즘’이 득세한다고 비판했다. ‘더 해빙’은 벌써 인기가 많이 시들해졌지만 여전히 서점에는 돈을 대하는 태도와 돈을 버는 방식만 바꾸면 부자가 된다는 책이 넘쳐나고 있다. 독자들이 책을 고르는 안목과 전문가들의 큐레이션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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