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온 세상 위하여’ 505장(통 268)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고린도전서 12장 1~3절, 14장 25절
말씀 :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논하는 과정에서 예수님을 일컫는 두 가지 명칭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저주할 자’로 부르기도 하고, ‘주’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헬라어로는 ‘아나데마 예수’와 ‘퀴리오스 예수’입니다.
‘아나데마 예수’는 저주받을 예수라는 말입니다. 망할 놈의 예수, 빌어먹을 예수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비방하고 욕하는 말입니다. 반면 ‘퀴리오스 예수’는 주님 예수라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아나데마 예수’는 불신의 단계를 가리키고, ‘퀴리오스 예수’는 신앙 결단의 단계를 가리킵니다. ‘아나데마 예수’ 단계에서 ‘퀴리오스 예수’의 단계로 넘어가려면 성령의 감화와 역사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지 않고서는 ‘퀴리오스 예수’라는 고백이 터져 나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은 ‘퀴리오스 예수’ 단계로 끝나나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한가요. 아닙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퀴리오스 예수’는 신앙의 초보 단계에 불과합니다. 겨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이것은 14장 25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온토스) 너희 가운데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예언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죄를 폭로하고 꾸짖을 때, 책망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이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 고백을 한 마디로 줄이면 ‘온토스’입니다. ‘온토스’는 ‘참으로’ ‘과연’이라는 뜻입니다.
‘퀴리오스 예수’를 고백하는 단계는 나 자신이 감동하고 은혜받는 단계입니다. 더 나아가 ‘온토스’ 단계는 다른 사람을 감화시키는 단계입니다. 바울은 교회 안에서 예언을 할 때 ‘온토스’의 고백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이런 고백을 끌어내야 합니다. 세상에 나가 우리가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도다’ 하는 고백을 하도록 감화를 끼쳐야 합니다.
신앙이 ‘퀴리오스 예수’의 단계에 머문다면 신앙공동체는 그들만의 천국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의 빛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끼리는 기쁘고 즐거울지 몰라도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는 못합니다.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선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은 ‘퀴리오스 예수’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온토스’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아나데마 예수’가 ‘퀴리오스 예수’로 바뀐 것처럼 모든 사람의 입술에서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는 조롱의 말이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도다’라는 칭송의 말로 바뀌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에게 세상을 감화시킬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오종윤 목사(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