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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이제야 푸니쿨라



무더운 한여름에 산동네를 오르자면 산허리께서부터 땀으로 범벅이 돼야 한다. 짐을 들었다면 더더욱 그렇다. 겨울에는 눈과 얼음 때문에 엉덩방아를 찧기 일쑤다. 삐끗하면서 허리, 발목, 손목을 다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노인들은 아예 한동안 출입을 삼간다. 비오는 날도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물론 계절과 상관없이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특히 여성들은 경사지에서 힐을 신고 걷거나 유모차를 끌 때 곤욕을 치러야 한다.

서울시가 2호선 이대역 인근 북아현동 일대 고지대에 유럽의 ‘푸니쿨라(funicular)’와 비슷한 방식의 보행 편의시설을 내년 중 설치하겠다고 1일 발표했다. 푸니쿨라는 밧줄이란 의미로, 케이블로 움직이는 경사형 엘리베이터다. 유럽의 고지대나 남미의 산동네 등에서 볼 수 있다. 서울시는 북아현동 말고도 성동구 대현산공원을 비롯해 다른 6곳의 고지대에도 보행 편의를 위해 모노레일이나 수직형 엘리베이터 등을 설치하기로 했다.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이번에 발표된 시설들은 2년 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강북구 삼양동에서 직접 한 달을 살아본 뒤 고지대 생활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것들이다. 보행 시설은 가장 기초적인 생활 편의 시설인데도 여지껏 ‘산동네 주민의 숙명’으로만 방치돼 왔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다. 전국적으로 따지면 이런 시설이 필요한 고지대가 수두룩할 것이다. 지자체장들이 이름을 남길 만한 큰 사업들만 신경 쓰느라 정작 기본적인 생활 불편 해소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게 아닌가 싶다. 광역단체장이 하지 않으면 기초단체장이라도 그런 일을 해야 할 텐데, 다들 보도블록 뒤집기에만 열심인 것 같다. 내년 4월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서울시장, 부산시장 자리를 놓고 여야 정치권이 벌써부터 뜨겁다. 차기 시장으로 큰 정치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작은 정치’ ‘생활 정치’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이가 오면 주민들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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