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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12월 17일] 호산나를 외칠 수 있는 그리스도인



찬송 : ‘예수 사랑하심을’ 563장(통 41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21장 8~9절


말씀 :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곳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치는 소리가 넘쳐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사명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던 날에 있었던 모습입니다.(9절) 그러나 이 열광을 예수님께서 마냥 좋아하기만 하셨을까요. 분명 예수님 마음은 편치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외치는 자들이 곧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치게 될 것을 아셨기에 예수님의 마음은 더 찢어지게 아프시지 않으셨을까요.(마 27:23)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되돌아보기 원합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세상에 나가서는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신자들은 아닌지요.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현실이 바로 본문의 현장에서 ‘호산나’를 외치면서도 곧, 돌변할 자들과 다를 바 없는 건 아닌지요.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의 히브리어 ‘호시아 나’를 음역한 것으로, 본래 구원에 대한 간구, 기원을 포함한 찬양이나 기쁨의 환호를 말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바라보는 대다수 사람 마음속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억압받는 유대 민족의 해방과 자유, 배고픔이라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의 문제도 해결하시는 ‘능력자’ 예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기대감으로 호산나를 외쳤지만, 며칠 후 빌라도 총독 앞에서 무기력한 예수를 보며 그들의 인간적인 기대는 부서졌습니다. 예수는 더 이상 자신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판단에 ‘호산나’ 소리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외침으로 바뀌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기대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내게 다가온 문제를 해결하고, 이 땅에서 살아가기 위한 풍요로움만을 공급해 주시면 그 역할이 끝나는 ‘도깨비 방망이’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결국 자신들의 생각대로 호산나를 외치는 이스라엘 백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를 향해 참으로 호산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일까요.

자신의 편견과 신념으로 우상을 만들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이 가신 그 길을 함께 걸어가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진정한 호산나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 외침에 주님은 감동하시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절대 가치는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적 편견과 신념의 틀을 깨뜨리기를 바랍니다. 이제라도 묵묵히 욕망의 소리를 내려놓고, 내 인생의 주인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절대가치를 두며, 무엇을 하든지 ‘주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생각하며 호산나를 외친다면, 예수님은 그 외침을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기도 : 주여, 우리가 삶의 문제 해결만을 위해 주님을 찾지 않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진정한 호산나를 외칠 수 있는 우리 가정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정용훈 목사(시카고 순복음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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