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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1월 6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에 대하여



찬송 : ‘천지에 있는 이름 중’ 80장(통 101)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 : 허균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보면 주인공 홍길동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것이 한(恨)이었습니다. 홍길동은 아버지를 대감이라고 불렀고, 아버지 앞에서 자신을 소인으로 지칭해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홍길동은 이 땅의 아버지조차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건만 우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안 계신 곳 없는 무소 부재의 전능자를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실감이 안 날 정도입니다.

그래서인가요. 우리는 과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의 의미를 알기는 아는 것일까요.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이 어느새 무덤덤하고 식상한 호칭, 그저 화석화된 종교적 언어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영접한다’는 말은 단순히 기쁘게 맞이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서 ‘예수를 영접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맞이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주인이던 삶에서 예수가 나의 주인이 되는 삶, 그게 바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를 믿는 삶입니다.

성경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권세는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나 정치적 권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분 상승으로 인해 주어지는 권위와 권리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맞이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상승하고, 그 신분에 맞는 권위와 권리가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왕자에게 왕자의 신분에 맞는 혜택이 주어지는 동시에 의무와 권리가 뒤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실까요. 예, 좋은 것만 주십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좋은 것이 우리에게는 좋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자는 예수와 함께 영광을 받게 하려고 고난도 함께 받습니다.(롬 8:15~17) 이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던 불의, 거짓, 불성실이 고통스럽게 다가옵니다. 이 고통은 더 그렇게 살 수 없음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려주시고 바꿔 가시는 과정입니다. 고난이지만 실은 좋은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녀에게 좋은 것만 줍니다. 아버지를 신뢰하는 자녀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홍길동과는 반대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혀끝으로 부르기만 하고, 하나님을 그저 맘씨 좋은 할아버지 정도로, 부자 노인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누구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기도 : 하나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 놀라운 영적 현실을 우리로 바르게 알게 하옵소서. 항상 주님의 자녀답게 주님 닮은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홍선경 목사(나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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