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첫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정확히 1년 만이었다. 안부를 묻고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1년 전 통화의 마지막 인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곧 보자.” 얼마 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됐고 ‘곧’은 줄곧 유예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작년에 얼굴을 못 봤네.” 이렇게 말하고 나니 한 해가 붕 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힘든 해를 보내고 난 뒤에 잊지 않고 먼저 연락해준 그에게 고마웠다.
“여전히 바쁘게 살지?” 잠깐의 침묵을 징검돌 삼아 질문이 튀어 나갔다. “나 5㎏이 넘게 살이 빠졌어.” 얼마나 바빴기에 끼니도 못 챙겼을까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요즘 매일같이 달리기를 하거든. 반년이 조금 넘었어.” 내 기억에 의하면 그는 분명 운동을 싫어한다. 대체 어떤 계기로 달리기를 시작했던 걸까. “지난여름에 재택근무를 했어. 출퇴근을 안 하는 기간이 길어지니 온몸이 찌뿌드드하더라.”
할 줄 아는 운동이 없어 그는 운동화를 신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100m만 달려도 헐떡거려서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한다. 꾸준히 하다 보니 인이 배어 달리기를 빼먹은 날에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달리기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고 매일 달린 거리를 기록해나갔다고 한다. “똑같은 데만 달리니까 재미가 없는 거야. 그래서 뛸 수 있는 데를 알아보았지. 인적 없는 시간대가 좋을 것 같아서 주로 동트기 전에 달렸어.” 오늘 새벽에도 근린공원을 몇 바퀴 돌았다고 덧붙였다.
새벽녘에 마스크를 끼고 달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팔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나저나 마스크가 은근히 보온 효과가 있다. 귀마개까지 했더니 완벽해.” 짐짓 여유를 부리며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워졌다. 새해 첫날부터 늦잠을 잔 나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었으니 말이다. “새해도 밝았으니 내친김에 오늘부터 달리기 일기를 써보려고 해. 처음에 뛸 때는 그저 멍했는데 이제는 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게 됐거든. 자연스레 이런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건넸는지도 가물가물했다. 오늘부터 친구가 쓸 달리기 일기가 부럽기도 했다. 동시에 실천은커녕 제대로 된 결심조차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새해 첫날이 전해 마지막 날보다 값지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지만 그것을 기점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 수는 있을 것이다. 작심삼일이라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하다 보면 1주일, 한 달이 계획대로 진행될 수도 있다. 루틴을 만드는 일은 그런 것이다.
늦은 오후 나는 책 읽기 일기를 써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평이라고 말하면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독후감이라고 말하면 숙제처럼 느껴지는데 ‘책 읽기 일기’라고 하니 부담이 사라졌다. 책에 대한 이야기와 하루에 있었던 인상적인 일을 뒤섞어 가볍게 써보기로 했다. 책에 있는 좋은 문장은 SNS에 공유하기로 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꾸준히 하고 싶었다. 아니, 누가 시키지 않았기에 꾸준히 하고 싶었다. 다행히 아직 1월 1일이었다.
그날부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책 읽기 일기를 쓰고 있다. 며칠 지나지 않았기에 어디 가서 자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은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날 읽은 책과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데는 힘이 들지만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도 얻은 것이 더 많다. 좋아하는 것이 나와 하루의 매개가 되어준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하루의 일과를 영수증으로 파악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주고받은 통화 내역이나 문자 메시지를 통해 복기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친구와 나는 달리기 일기와 책 읽기 일기를 쓰며 오늘을, 스스로를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좋아하는 것, 일상적으로 하는 것, 매일 접하는 것을 소재로 일기를 써보는 건 더없이 좋은 일 같다. 나를 구성하는 것을 통해 스스로를 재발견할 수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산 물건, 오늘 먹은 음식, 오늘 들은 음악 등 내 곁에 있는 것을 응시하자. 어느 순간, 결심이 결실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오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