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석학이자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UC버클리대 교수는 지난해 4월 영국 가디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코로나19로 미국 사회에 새로운 4개 계급이 출현했다고 분석했다. 원격 근무가 가능한 고소득 노동자, 위험하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노동자,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 잊혀진 노동자다. 그러면서 라이시는 이들 사이의 격차를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필수적 노동자들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면, 임금 미지급 노동자들이 건강보다 경제활동을 우선시해 일터로 돌아간다면, 잊혀진 사람들이 그대로 잊혀진다면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코로나19는 취약계층에게 더 큰 재난으로 다가와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재난은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다. 불안한 고용 형태와 허약한 사회안전망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무너졌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1월 취업자는 2724만명으로 전년보다 27만3000명 줄었다. 취업자 수는 지난해 3월 이후 9개월 연속 감소세다. 고용 감소는 여성·청년층·임시직에 집중됐다.
한국은행은 최근 ‘코로나19 위기 이후 성장 불균형 평가’ 보고서에서 “이번 위기가 신흥국, 대면서비스 업종, 취약계층에 영구적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성장 불균형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부유층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을 불려 가는 사이 취약계층은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가 주장한 대로 노동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가지 못한다.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그 사회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이들에게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삶의 동아줄이 돼 줘야 한다. 국가가 재정으로 이들을 구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코로나19는 탐욕과 재물의 바벨탑을 쌓는 데 급급했던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이자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의 종교로 거듭나라는 주문이다. 고아와 과부 등 약자들을 돌보신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게 코로나 디바이드 시대에 교회가 할 일이다.
‘하나님과 팬데믹’의 저자인 톰 라이트는 팬데믹이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긍휼의 사역에 집중하게 하는 때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를 죄와 타락으로부터 구원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회복시켜 지금 이때 ‘팬데믹의 세계적 환난 중에’ 우리로 감당하고 섬길 긍휼의 사역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말한다. 초대교회도 재난의 때에 힘써 연보해 가난한 자들을 섬겼다.
여의도순복음교회와 명성교회, 사랑의교회, 광림교회, 강남중앙침례교회, 소망교회 등 대형교회 6곳이 지난해 말 교회 수양관과 기도원을 코로나 환자 생활치료공간으로 내놓고 지구촌교회, 분당 만나교회, 주안장로교회, 온누리교회, 충현교회 등 15개 교회가 목회자 모임인 ‘사귐과 섬김’을 중심으로 올해 4월 부활절까지 코로나19로 인한 혈액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해 헌혈 캠페인을 벌이기로 한 것은 그래서 반갑다.
코로나 확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절망과 우울함 속에 새해를 맞았다. 교계는 신년사를 통해 시대의 등대가 되지 못하고 권력에 길들여진 지난날을 반성하며 분골쇄신해서 소외된 이웃을 섬기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한국교회총연합의 다짐대로 성공과 탐욕의 미몽에서 깨어나 사도행전적 신앙을 회복하고 성경적 원형교회를 세워가는 한 해가 되길 기대한다.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