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처벌조항이 올해부터 사실상 폐지 상태에 들어갔다. 정부와 국회가 지난해 말까지였던 개정시한까지 법을 개정하지 않아 모든 임신중단에 대한 법적 제한이 풀렸기 때문이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과 태아의 생명권 보호 간 접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임신중단 진료체계에 대한 준비 없이 입법공백 상태가 되면서 각종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10주 미만의 산모에만낙태 시술을 시행하고, 임신 10주부터 22주 미만까지는 충분한 숙려기간을 갖도록 한 후 낙태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의사의 낙태 거부권 보장도 요구했다. 대한산부인과의학회와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해 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선별적 낙태 거부안’을 발표했다. 특히 낙태 가능 주수가 정부 기준보다 다소 엄격해 주목된다. 앞서 지난해 10월 국무조정실이 법무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여성가족부 등 협의를 거쳐 내놓은 법률 개정안에서는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15주부터 24주까지는 합당한 사유를 소명하면 조건부로 낙태를 가능하도록 제시했다. 반면 의료계가 구성한 ‘낙태법특별위원회’는 조건 없는 낙태는 임신 10주(70일)미만까지, 상담 등 절차가 필요한 낙태 기간은 임신 10주부터 22주 미만으로 규정했다.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은 “임신 10주가 넘으면 보통 태아의 크기가 5㎝쯤 되고, 뼈가 형성된다. 인위적으로 유산시키면 자궁경부 손상이나 출혈 등 합병증의 위험이 높아지는 시기다. 또 10주 이후 DNA검사 등 산전 진단이 시작돼 무분별한 낙태가 이뤄질 우려가 있어 숙려기간을 두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낙태가 가능한 기간을 24주가 아닌 22주 미만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는 “현재 24주쯤 나온 태아가 살 확률은 50%, 23주는 30% 정도다. 22주를 넘어서면 유산이 아닌 조산에 해당한다는 의학적 판단에 따라 규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공임신중절술 등 의학교육도 문제다. 임신중단을 범죄로 규정한 1953년 이후 의학교육과정에서 인공임신중절 등 교육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최근에 배출된 산부인과 의사들은 인공임신중절술 관련 실습 경험이 전무한 셈이다. 임신중단 관련 교육 재개를 놓고 의학계의 고민도 높다. 산부인과 전공의에 대한 교육과 실습에 대해 수련병원 내 환자들의 눈초리가 곱지만은 않아서다. 인공임신중절술 등 민감한 시술의 경우 더욱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이 이사장은 “앞으로 배출되는 전공의들은 인공임신중절술을 배울 수 있어야 할 텐데 최근 수련병원에서 전공의의 실습참여를 꺼리는 분위기가 높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이 회장은 “실력 있는 의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공의 시절 현장에서 충분한 교육과 실습을 받아야 한다. 가족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사회적으로도 전공의가 환자들의 진료보조자로 참여하는 것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갑작스런 입법공백에 일선 현장의 혼란도 예상된다. 정부는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확대를 검토하고, 인공임신중절 의약품(유산유도제) 도입에도 속도를 내겠다는 계획이다. 유산유도제를 국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아직 불법에 해당한다. 식약처는 ‘인공임신중단 관련 사항 안내’를 통해 “제약회사 등의 허가 신청이 있는 경우 인공임신중절 의약품의 허가·심사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서둘러 대체입법을 해달라는 현장의 목소리도 높다. 김동석 직선제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의료계의 권고안은 사실상 구속력이 없다. 낙태를 해달라는 환자와 의사 간 갈등이 발생할 우려도 높다”며 “의사의 낙태 거부권을 명시해 하루빨리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미옥 쿠키뉴스 기자 romeok@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