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두 명이 마주 앉은 편의점 야외 테이블 중앙에 즉석식품이 놓여 있다. 장면이 클로즈업돼도 도통 어떤 상품인지 알 수 없다. 한국에선 판매하지 않는 중국 브랜드의 ‘훠궈’(중국식 샤브샤브)다. 남자 주인공 뒤쪽 광고판도 수상하다. 한국에 정식 서비스를 하지 않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의 로고다.
tvN 수목극 ‘여신강림’ 곳곳에 중국 기업의 PPL(간접광고)이 노골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드라마 시장에 유입되는 ‘차이나 머니’는 제작비 확보 측면에선 효용가치가 있지만, 문화 잠식·역사 왜곡 등 콘텐츠 질 하락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차이나 머니 투입은 2014년 무렵부터 본격화 됐다. 그해 SBS에서 방송한 이승기 주연의 ‘너희들은 포위됐다’에는 중국 화장품 기업이 거액을 투자했고, 한류스타 박유천이 나온 ‘쓰리데이즈’와 이종석 주연의 ‘닥터 이방인’에는 중국 인터넷 쇼핑몰 앱이 등장했다. 2016년 tvN ‘도깨비’에도 중국 칵테일 브랜드가 노출됐다. 당시만 해도 중국 내 제3의 한류 물결이 거세 한국 콘텐츠 투자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한한령(限韓令·2016년 사드 배치 후 내려진 중국 내 한류 금지령) 여파로 국내 시청자 반감이 어느 때보다 강해서다. 국내 여론은 악화했지만 중국 기업은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첫번째 이유는 자국민이 VPN 우회 접속 활용을 불사하며 여전히 한국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고, 두번째는 넷플릭스 등에서 파급력이 상당한 K드라마를 등에 업고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서다.
차이나 머니 유입을 경계하는 이유는 중국에 대한 반감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해 디즈니 영화 ‘뮬란’ 논란은 문화 점령 우려에 불을 지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디즈니가 중국과 부끄러운 타협을 했다”고 비판했다.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의 인권 탄압을 자행한 신장지역에서 영화를 촬영하면서 반인권적인 범죄의 정당화를 도왔다는 지적이었다. BBC 역시 엔딩 크레딧에 적힌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투루판 공안국에 감사하다’는 문구를 지적했다.
사실 ‘중국의 현금에 중독된’ 건 디즈니 뿐이 아닌 전 세계의 문제다. 할리우드에서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 건 20년이 넘은 일이다. 한국이 예외일 수는 없다. 한 콘텐츠업계 관계자는 “시청자가 ‘중국 광고 보기 싫어’라는 일차원적인 지적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뮬란’ 등의 사태를 겪으며 문화 잠식을 우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김치나 한복을 자신들의 문화라 주장하고 ‘동북공정’ ‘항미원조’ 논란 등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기에 이런 걱정은 당연하다”며 “제작자와 투자자 간 폭넓은 타협이 필요한데, 중국의 요구를 뿌리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국내 드라마 산업에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는 시각도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쪽대본’ 등을 활용해야 할 정도로 제작 환경이 열악했지만 지금은 사전제작이 꽤 많아졌다”며 “이 배경에는 차이나 머니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국 자본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상황이다”며 “지나친 개입을 경계하면서 개선 방향으로 끌고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