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에는 인사 이동과 근로계약 갱신이 이루어진다. 보이던 손님이 갑자기 보이지 않거나, 한동안 보이지 않던 손님이 새해에 불쑥 나타나기도 한다. 어디 멀리 지방으로 발령났나 보구나 홀로 추측하기도 하고, 해외 지사에 나가 실컷 고생하고 돌아왔다는 무용담을 엿듣기도 한다. “아저씨, 오랜만입니다” 하면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와 반갑게 인사하는 손님도 있다. 편의점 안에서 그렇게 시간과 함께 사람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손님은 작은 키에 배가 볼록했다. 늘 캐러멜마키아토 캔커피를 마셨는데, 그것도 특정한 브랜드만 줄곧 고집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 편의점에 들러 그것만 사갔다. 어떤 날은 약간 과장을 보태 예닐곱 번도 오갔던 것 같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저것만 찾나 싶어 나도 한 번 마셔봤는데 이크, 너무 달았다. 극한의 단맛을 갈구하는 손님이로구나 싶었다. 달콤한 커피처럼 항상 다정한 표정이었고 곰살궂게 굴었다. “언제 한번 소주나 하십시다” 불쑥 청하고 싶을 정도로 친근한 마음을 몰래 품고 있었다.
그랬던 손님이 그날도 역시 캔커피를 사러 왔는데, “오늘로 이것도 마지막이네요” 하면서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계약 연장을 못해 짐 싸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제품으로 기억되는 손님이 있다. 특정한 손님이 떠난 뒤로는 찾는 사람이 없어 그 제품을 진열할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캐러멜마키아토’는 그런 손님이었다.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스무 평짜리 작은 편의점, 손바닥만 한 카운터 안에 앉아 종종 생각하곤 한다. 사람 사이 인연에 대해 돌아본다.
손님뿐 아니라 직원도 그렇다. 수년간 함께 일했으면서도 그만둔 뒤론 연락 한 번 없는 직원이 있고, 잠시 몇 개월 일했을 뿐인데 새해마다 명절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는 직원이 있다. 어차피 남남이라 생각하며 애써 태연하지만 좀 서운한 느낌을 갖는 인연이 있고,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고맙고 미안한 인연이 있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런 것을 되돌아 살핀다. 만남보다 중요한 것이 헤어짐이라는데, 매번 헤어짐에 원만하지 못했구나 반성하며 후회하기도 한다.
올해도 신년 메시지를 여럿 받았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했는데 ‘복붙’해서 다시 보내는 답장만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답장을 보낼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넬까…. 소심한 나는 한참 망설이며 고민한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늦더라도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느닷없는 1월의 한복판에 “조금 늦었지만 새해 인사드려요. 올해 건강하시고, 소원하는 일 모두 이루시길 바라요”, 이러면 오히려 기억에 남지 않을까. 독자 여러분께도 새해 인사 드립니다. 지난해 미루었던 모든 것을 하나둘 되찾는 2021년 되시길! ‘캐러멜마키아토’ 손님이 정규직이 됐다며 활짝 웃으며 다시 찾아오고, 너무 바빠 편의점 직원을 두세 명 더 고용해야 하는 새해 꿈을 가져본다.
봉달호 (작가·편의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