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요한복음 16장 7~11절을 통해 성령님의 3대 사역을 볼 수 있다. 필자는 본문에 나온 성령님의 일하심이 입체적·동시적 사역이자 영적인 단계라고 생각한다. 또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물론 성령의 사역을 기계적 도식화로 정의할 순 없다. 그런 전제에서 필자가 적용하고 실천하는 목회적 측면에서 개인과 교회를 향하신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조명하고자 한다.
요한복음 16장 8절인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첫째 ‘죄에 대하여’라 함은 구원의 과정을 뜻한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9절)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다. 그분이 주권적으로 한 개인, 한 나라를 택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는 사역과 복음화를 이루는 과정으로 구원의 단계이다.
이때 성령의 사역은 개인적으로는 거듭나는 중생을 체험하는 구원 단계 즉 신앙의 입문 단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역사가 도시와 국가 단위로 일어날 때 ‘부흥’이라고 한다. 이 시기에 구원을 위한 기적과 표적 등이 많이 나타난다.
구원적 단계의 부흥은 신앙이 초보적이기 때문에 미숙하고 기복주의적이며 때론 샤머니즘 성격을 갖기도 한다. 그러나 부흥의 열매로 많은 교회가 생기고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몰려든다. 뜨거움과 열정, 헌신과 희생이 있지만 신앙은 아직 어린아이 단계이다.
우리는 1907년 이후 한국전쟁,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80년대까지 부흥을 경험했다. 세계 50대 교회 중 절반이 대한민국에 존재했고 짧은 시간에 세계 2위의 선교 대국이 됐다. 그러나 동시에 수많은 부작용이 안팎에서 생기며 새로운 갈망이 시작됐다. 이것은 악한 것이나 이상한 것이 아닌 당연한 과정이다.
둘째 ‘의에 대하여’라 함은 제자화의 과정을 뜻한다. 이 단계는 성령께서 개인 혹은 교회를 성숙시키시는 과정으로 제자화 사역이 일어난다. 자기의 연약함과 씨름하고 변화를 위한 갈등 속에서 주님의 성품과 인격을 닮으려고 하는 일이 시작된다. 교회는 구원을 넘어 본질적인 갈망을 갖고 성장을 하게 된다. 성경에 대한 갈망, 하나님을 더 알고 싶은 갈망, 예배에 대한 사모함으로 교회가 부르심과 사명, 선교에 눈을 뜨게 된다.
필자는 한국교회가 70년대 대부흥 운동이었던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1973년) ‘엑스플로 74’(1974년) 등을 경험했고 이후 2000년대를 지나 이 단계를 통과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많은 위기와 어려움에 직면했고 한계에 도달했다. 90년대 중반부터 교회 성장이 멈췄다. 포스트 모던이라는 전 세계 변화 가운데 산업화 시대, 금융경제 시대, 매스 미디어 시대를 지나갔다. 4차 산업혁명기로 접어든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아무도 예기치 못한 재앙을 만나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제자도 과정 역시 부정도 긍정도 아닌,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닌,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일하시는 과정이다.
셋째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어떤 과정인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회 방향을 성령의 사역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10절) 이것은 영적 전쟁에 대한 말씀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구원, 제자도의 단계를 지나 세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승리하는 파송의 단계를 의미한다. 이것을 ‘사도적 제자의 단계’라고 한다.
복음서의 예수님 곁에서 배우고 머무르며 훈련을 받던 제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보내심을 받은 제자의 단계다. 십자가 승리를 세상에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상 가운데 나타내는 단계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회 사역이 많이 위축됐고 많은 교회가 문을 닫거나 교회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이뿐 아니라 넓은 예배당의 유지가 어려워 구조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신앙의 단계와 영성이 필요하다. 코로나19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주님의 지상명령과 남은 과업을 달성하고 그의 다시 오심을 맞이할 교회, 영적 전쟁에 승리하고 돌파할 수 있는 교회가 나아갈 플랫폼 처치에 대해 계속 나누고자 한다.
박호종 목사(더크로스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