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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정신건강이 미래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의 시간을 안겨주고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세상과의 단절로 인해 평범한 일상이 파괴되고 있다. 많은 이들의 희망이 사라지고 그 빈 공간을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이 채우고 있다. 고통의 시간이 또 다른 그리움과 작은 행복의 단상을 불러일으키지만, 당장 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국민들의 정서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코로나 이후의 세상에 대한 많은 담론들이 오가고 있다. 경제·사회구조의 변화, 문화생태계, 교육의 변화 등이 주류를 형성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정신건강에 대한 논의가 될 것이다. 우울하고 고립됐던 삶의 변화는 공동체의 근간을 흔들고, 산업구조의 변화, 특히 비대면 서비스의 양산은 직접 대면에 종사하는 이들의 대량 해고로 이어진다. 또 나이가 들면서 생겨나는 신체적 질환들은 모두 정서적 증상으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좌절감, 우울, 불안 등 개인 정신건강의 지표가 되어 돌아온다.

건강과 노동의 관계는 GDP와 더불어 정신건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제 정신건강을 예방하고 증진시키는 정책은 보건복지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사회·경제·문화 정책의 일환으로 인식돼야 함이 명백해진다. 이런 점에서 그간 우리 사회가 소홀하게 대처해왔던 정신건강의 지표들은 이제 코로나 이후 대한민국의 삶의 질을 좌우할 절대적 상수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국민 정신건강복지 기본계획(2021~2025)’은 지난 20년간 수립된 여러 번의 정신건강 계획보다 훨씬 탁월하다.

첫째, 코로나19라는 미래사회를 대비한 장기 대응 전략의 필요에 따라 설계된 것이다. 선진국들은 정신건강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적극적인 예방정책을 선도해 왔다. 특히 2020년 5월에 발표된 유엔보고서는 국가 재정투자의 필수적 요소에 정신건강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이미 세계경제대국 10위에 진입한 국가의 위상에 맞는 정신건강정책이 수립된 것이다. 둘째, 정신질환의 치료와 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요구되는 시대상황이 반영된 정책이다. 2017년 9월부터 도입된 ‘치매국가책임제’의 확장성과 코로나19 집단감염 발생을 계기로 그간 정책의 사각지대였던 정신의료 서비스의 인프라를 선진화하는 계획이 수립된 것이다. 치료친화적 환경을 조성하고, 스마트 기기의 도입을 통한 인권 강화 등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개인과 가족의 고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셋째, 국가 정신건강정책 추진과정에 범정부 거버넌스 형성이 이뤄진 점이다. 정신건강의 문제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보건복지의 영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과 외톨이 현상(교육부), 군대 내 폭력문제(국방부), 직장 내 갑질과 따돌림(고용부, 중소기업부), 성희롱 피해자(여가부) 등을 위한 법·제도의 마련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각 부처의 협력과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번 정신건강정책의 거버넌스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국가의 단면을 평가하려면, 그 나라의 정신건강정책 수준을 보라는 말이 있다.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보면 그 나라의 건강과 인권수준이 드러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최악의 시대가 최고의 시대가 될 수 있고, 무지와 탐욕으로부터 지혜와 공동체의 번영을 만들어 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단절될수록 서로 연결되려고 하는 인간 본연의 움직임이 있다. 단언컨대 그것이 바로 정신건강의 핵심 가치이다.

이영문 국립정신건강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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