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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2월 10일]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찬송 :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545장(통 344)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22장 7~8절


말씀 :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입니다. 미개한 이방 종교에서나 허용될 법한 인신 제사를 명령하셨기 때문인가요. 그것보다 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삭이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라 하십니다. 이 두 말씀 사이에 엄청난 불일치가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8절에서 이삭이 묻습니다. “아버지, 제사 지내러 가는데 어린양이 없습니다.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물음에 아브라함은 대답하죠.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걷습니다. 아브라함은 왜 이렇게 답한 것일까요. ‘이삭, 네가 제물’이라고 말하면 달아날까 봐 거짓말을 했을까요. 8절에 기록된 아브라함의 고백은 진심이자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답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준비하실지에 대한 방법이 빠져 있습니다.

모리아 땅까지 3일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이삭과 단둘이 산을 오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걷는 내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 말씀의 불일치, 그 해결 방안을 묵상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때 일반적인 사람들은 인간적인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우리는 그것을 타협이라고 부르죠.

하지만 아브라함은 묵묵히 8절의 대답을 이삭에게 전합니다. “아들아 하나님이 하실 거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모르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하실 거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은 아브라함이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릴 수 있는 하나님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이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시험과 유혹에 갈등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연결고리를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다윗도 시편 37편 5절에서 말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다윗의 고백에도 해결 방법은 명시돼 있지 않습니다. 사울과 아들 압살롬에게 쫓겼던 그의 인생 가운데 방법은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그것이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불일치는 십자가에서 일어났습니다. 구원자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죽임이 완전한 구원을 이뤄냈습니다. 그 어린양 예수를 바라보며 오늘 하루도 믿음의 걸음을 함께 걸어갑시다.

기도 : 하나님, 믿음의 선진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옵소서. 해결 방법이 아니라 신실하신 주님을 믿고 걸어가는 하루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전인철 목사(그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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