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을 넘긴 누님이 한 분 계신다. 해마다 설날이면 아내와 함께 세배를 했었다. 올 해는 가족이라 해도 5인 이상 만나지 못하게 한다며 우리도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연휴 사흘째 토요일,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워 아침 일찍 전화를 드렸다. 집 안에 아무도 없이 혼자 계신다는 거였다. 하루 전 설날은 둘째 딸 집에서 점심을 먹고 왔다며 집에는 먹을 것이 없단다. 냉장고를 열어 전이며 꼬치 같은 명절 음식을 챙겼다. 아내와 같이 탄 전철 안은 좌석이 많이 남아 있을 정도로 승객이 줄었다. 예년 같으면 선물 꾸러미를 든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올해는 확실히 명절 분위기가 아니다. 마스크를 쓴 얼굴에 눈마저 지친 모습들이다. 일을 하지 않으니 소득이 줄 수밖에 없을 것이고 소득이 적으면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든 적게 쓰고 이 위기를 넘겨야 한다며 허리띠를 조이려고 한다.
팔순의 노인이 혼자 계시는 아파트 21층.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강아지가 인기척을 느끼고 먼저 짖는다. 안에서 개를 꾸짖는 누님의 목소리인가 했더니 현관문이 열린다. 지난 추석 때 뵌 뒤로 더 수척해진 것 같다. 자주 찾지 못한 죄책감이 들어 마음이 무겁다. 전에 살던 집이 주택 단지에 편입돼 적은 보상을 받아 겨우 마련한 서민 아파트. 종일 갇혀 지내야 하는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다고 만날 때마다 하소연이시다. 고향에 작은 집을 얻어 텃밭이나 가꾸며 여생을 보내고 싶지만 출가하지 않은 막내딸을 팽개칠 수 없단다. 요즈음은 노인정도 폐쇄된 터라 사람도 만날 수 없다며 종일 갇혀 지낸다는 말을 들으니 내가 잘 못하여 고생을 시키는 것만 같다.
이번 감염증이 벌써 해를 넘기고 두 달이 지났다. 한 가지 희망이라면 백신이 나온다고 하니 기다려 볼 수밖에. 점점 살기 편리한 세상이 온다고 하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이런 고통을 겪었지만 다음 세대는 결코 되풀이하지 말았으면 한다. 먼 훗날 ‘그때는 그랬었지’ 하는 추억으로만 남았으면.
오병훈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