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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술 미화 드라마·예능, 청소년기 음주 부추긴다

지난해 8월 28일 오후 10시대에 방영된 SBS 드라마 ‘앨리스’의 한 장면. 엄마와 고등학생 아들이 술 마시는 장면이 5분간 전파를 탔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권유하고 음주를 미화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가 진행 중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 제공




건강증진개발원 240개 프로 분석
음주 장면 내보낸 횟수 2441건
실제 제재 받은 사례는 거의 없어
프랑스·태국, 음주 장면 적극 규제

#1. 지난해 8~10월 인기를 끌었던 SBS드라마 ‘앨리스’의 1회차 방영분(8월 28일 오후 10시)에 주인공 엄마와 고등학생 아들이 함께 술 마시는 장면이 약 5분간 전파를 탔다. 빈 소주잔을 건네는 엄마를 보고 교복입은 아들은 소주병을 들어 잔을 채워준다. 엄마는 바로 원샷하고 빈잔을 머리 위로 털면서 “아~좋다”는 말을 한다. 엄마는“우리 아들도 한 잔만 마셔볼래? 원래 술은 부모님한테 배워야 해”라며 권유한다.

미성년자에게 음주를 강요하고 술을 미화하는 이 장면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를 받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개발원)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 음주 장면으로 선정돼 심의 요청이 이뤄졌다.

개발원이 일반 성인 140명에게 해당 장면에 대한 의견을 물은 결과 50%가 “청소년이 음주를 따라하고 싶어지게끔 묘사했다”고 응답했다. 40.7%는 “해당 장면이 잘못된 음주 행동을 일반적 상황으로 묘사했다”, 39.3%는 “드라마에서 적절하지 않은 장면”이라고 답했다.

#2. E채널과 드라마큐브, 패션앤 등 3곳의 케이블채널은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8시30분대에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노는 언니’ 15회차에서 음주 장면을 무려 16분이나 내보내 방심위 자체 모니터링과 심의를 통해 ‘주의’ 조치를 받았다. 여성 스포츠 스타 출연자들이 모여 지역의 술을 마시며 “이건 약이잖아요” “달달했다” 등의 발언과 술 관련 일화를 언급하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방송됐다. 방심위는 “음주를 미화하거나 부추길 수 있는 내용을 청소년 시청 보호시간대에 장시간 방영했다는 점에서 법정 제재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이처럼 지상파 방송과 종합편성채널(종편), 케이블채널을 막론하고 음주를 미화하고 술에 대해 관대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일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청소년이 즐겨보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속 음주 장면들이 특히 문제로 지적된다.

개발원이 지난해 1~11월 청소년 시청률 상위 10위권 드라마 120개(편수 1351회)와 예능 120개(편수 873회) 등 총 240개를 모니터링한 결과 음주 장면이 노출된 프로그램은 220개, 편수는 1218회, 음주 방심위면 횟수(직접 음주 및 정황상 음주 추정 장면)는 2441건에 달했다.

노출된 음주 장면 수는 드라마가 2090건으로 예능(351건)보다 훨씬 많았다. 지상파 방송(1207건)과 종편·케이블방송(1234건)이 비슷했다. 전체 프로그램 편수를 음주 장면 횟수로 나눈 음주 장면 노출율(2441건/2224회)은 1.1건이었다. 즉 TV 드라마·예능 한 회(편)당 1건 꼴로 음주 장면이 등장했다는 얘기다.

개발원은 2441건의 음주장면 가운데 문제 음주장면 28건을 선정해 방심위에 규정 위반 심의를 요청했다. 개발원은 2018년부터 미디어 음주장면 모니터링(연 6회)을 해오고 있다. 모니터링 결과 2018년 음주장면 노출 드라마·예능 프로그램 수는 2018년 81개, 2019년 86개, 2020년(11월 말 기준) 220개로 증가 추세다. 음주 장면 노출 횟수도 같은 기간 1183건→1780건→2441건으로 급증했다. 1회 당 음주 장면 수(음주 노출율)은 같은 기간 0.8건→0.8건→1.1건으로 높아졌다.

개발원은 2017년 보건복지부와 함께 마련한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폭음·폭탄주 등 해로운 음주행동, 미성년자 음주 조장, 질병 치료·체력 향상 등 술에 대한 긍정적 표현 및 장기간 묘사 등)에 비추어 문제 있다고 판단될 경우 방송 심의를 요청한다.

문제는 방심위 심의 후 실제 제재가 이뤄지는 사례가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개발원이 모니터링을 통해 2018년 81건, 2019년 20건, 지난해 28건(11월 말 기준)의 문제 음주 장면에 대해 심의를 요청했으나 3년간 법정 제재 조치가 내려진 건 2019년 주의 조치 달랑 1건 뿐이었다. 방심위는 자체 모니터링도 진행하지만 성폭력, 흡연 등 다른 위반 사항까지 함께 하다 보니 음주 문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많지 않다.

이상규 한림의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15일 “드라마에서 과도한 음주를 매력적으로 표현하거나 술을 마시면서 진행하는 예능 등 알코올 관련 시각적 장면의 맥락이 음주에 대한 태도와 욕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면서 “특히 많은 미디어 노출은 청소년의 빠른 음주 시작, 이후 높은 음주 빈도와 정적인 상관 관계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디어를 통한 음주 장면 경험은 음주 행동의 일상화, 규범화를 조장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술이 강하다고 과시하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면 청소년 시청자에게 ‘술을 잘 마시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해외 많은 국가들은 TV 속 음주 장면을 적극 규제하는 추세다. 프랑스에서는 대중매체에서 술을 통한 친목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태국은 드라마에서 술을 갖다 주거나 들고오는 장면을 금지하고, 베트남도 대중매체 속 주류 노출을 엄격히 규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유현재 서강대 헬스커뮤니케이션학 전공 교수는 “2017년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 제정 당시 모 TV 예능 프로에서 유명 가수가 일명 ‘소주 분수’를 만들어 술 마시는 장면이 그대로 전파를 타 방송계에서 자정 움직임이 크게 일었다”면서 “하지만 그 후 다시 TV 속 술 권하는 장면들이 슬금슬금 돌아왔다. 언론이나 관계기관의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미디어 음주장면 가이드라인이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면서 “방송계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내용으로 업데이트해 실천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인성 건강증진개발원장은 “드라마, 예능에서 묘사되는 문제음주 장면 규제를 위해 지난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방심위에서 적극 반영이 안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심의·조치율 제고를 위해 협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미디어 음주장면 규제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높이고 방송계 자정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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