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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이런 국가대표, 누가 키웠나



설 연휴 직전 배구 국가대표이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쌍둥이 자매인 이재영·다영 선수의 학교폭력 폭로가 터져 나왔다. 뛰어난 실력에 쌍둥이 자매 선수라는 화제성까지 겹치며 스타성을 인정받은 이들은 경기장뿐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과 CF까지 찍으며 활약해 왔다. 폭로 직후 당사자들이 즉각 인정하고 자필 사과문을 띄웠지만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이들이 출연했던 방송과 광고 영상은 빠른 속도로 삭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선수 퇴출 요구가 올라왔고 무섭게 공감 숫자를 늘려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여러 면에서 한국의 체육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능력주의’에 질문을 던진다. 경기 결과에 따라 즉각적인 판단을 받는 체육계는 어느 분야보다 능력주의의 힘이 센 동네다. 그동안 수차례 이런 문제가 불거졌지만 실력 있는 선수라면 조금 나쁜 짓을 해도 용인해주는 체육계의 관행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가해자의 실력이 더 뛰어나고, 집안 배경까지 갖춘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목소리 내기란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피해자들은 쌍둥이 자매가 피해자 노릇 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나섰다고 했다. 흥국생명에서 한솥밥을 먹게 된 김연경 선수와의 갈등설이 불거진 뒤 이다영은 피해자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고 감정적으로 대응했다. 그 모습이 과거의 피해자들을 움직이게 했다. 이들은 중학교 시절, 두 선수로부터 강제적인 심부름과 약취, 모욕을 당했을 뿐 아니라 칼로 협박당한 일까지 폭로했다. 그리고 배구 실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해 왔던 이들은 20대 중반에 인생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두 선수의 문제 행동이 지적당하고 고쳐질 기회는 정말 없었을까. 학생 시절 이들을 가르쳤던 코치나 감독은 정말 몰랐을까. 이들이 프로 선수로 뛰는 동안에도 문제적 행동이 동료들의 입을 통해 ‘짓궂은 장난’이라는 식으로 언급된 적이 있었다. 구단 역시 알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소속 팀 성적에 기여하고 여자배구 전성기를 끌어냈다는 평가, 높은 연봉, 여기에 엄청난 열성 팬까지 겹치면서 이들의 문제는 진짜 문제로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았다.

젊은 나이에 스포츠 스타로 입지를 굳혔지만 이들이 코트 밖에서 보여온 불안정한 모습은 마이클 샌델이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언급한 ‘상처 입은 승리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샌델 교수는 능력주의 문화 속에서 경쟁이 심화하고, 과잉 개입하는 부모들로 인해 부유하고 좋은 조건의 집안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행감을 토로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이들을 상처 입은 승리자에 빗댔다.

사안을 들여다볼수록 처음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다뤄졌더라면 지금 이런 국가대표는 보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 사회가 그 사건을 직시했더라면 피해자의 삶도, 가해자들의 삶도, 배구계 문화도 분명 달라지지 않았을까. 학교폭력 문제를 다룸에 있어 앞서 있는 나라들이 하나같이 강조하는 것이 일관성 있는 대처라고 한다. 학교폭력과 같은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지르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반드시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그 어떤 예방 교육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과연 어느 정도가 적절한 징계인지, 국가대표 선수의 자질과 자격은 무엇인지, 성적만능주의의 폐단을 어떻게 끊어낼지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소속 구단인 흥국생명과 한국배구연맹(KOVO), 그리고 대한배구협회의 다음 결정에 쏠려 있는 이유다.

김나래 정치부 차장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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