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살며 사랑하며] 어떤 행복



서울에 있을 때는 아침에 성북구 돈암동 길을 종종 달린다. 메인길, 하나로길, 패션거리 등으로 불리는 번화가 길이다. 길의 양옆에는 포장마차, 카페, 미용실, 옷가게, 술집, 음식점, 휴대전화가게 등이 즐비하다. 이른 아침일 때는 모두 문이 닫혀 있지만 늦은 오전일 때는 하나둘 오픈 준비를 하는 가게 점원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바닥엔 전날 밤의 흔적인 테이크아웃 컵, 담배꽁초, 누군가의 토사물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마치 물청소를 한 듯 깨끗하고 단정한 골목길을 달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아침 태양 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다소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유흥의 거리 위를 달리는 것에도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즐거움을 느낀다. 골목 곳곳에 널려 있는 쓰레기를 보며 전날 밤의 소란을 짐작해본다. 나는 네온사인이 꺼진 간판의 한숨 돌리는 듯한 지친 기색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길의 끝까지 달려나간다.

이 길은 내가 중학생 시절 많이 놀았던 구역이기도 하다. 스스로에 대해 아직 객관적인 파악이 되지 않은 채로 예뻐지고 싶은 욕망만 끓어올랐던 그때 이상한 신발도 옷도 다 이 길에서 사곤 했다. 부모님이 당최 허락해주지 않아 샀던 신발을 반품하고 환불받았던 신발가게,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한 대씩 놓여 있는 자리에서 체리 콕을 먹으며 자그마치 세 명의 남자친구를 동시에 만난다는 날라리 친구의 무용담을 홀린 듯 들었던 카페, 방학 때면 몰래 머리 염색을 했던 미용실, 친구와 줄기차게 사진을 찍었던 스티커사진관…. 나는 달리며 하나하나 곱씹는다.

기억으로 살려낸 1990년대의 거리를 끝까지 달려 왼편으로 방향을 틀면, 유일하게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짱구분식이 나타난다. 오늘도 별일 없이 장사 잘하세요! 속으로 응원하며 이 가게를 반환점 삼아 뒤돌아 달려나가면 태양은 내 왼편에서 나를 비춘다. 이런 순간의 행복이 얼마나 무서운지, 나는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어진다.

요조 가수·작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