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2회 만에 결방을 결정했다. 중국 문화를 부각하고, 한국 역사를 왜곡하면서 벌어진 이번 사태는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국내 반중 정서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더 예민해야 할 시기에 시청자를 기만하면서 거대 시장인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구마사’의 첫 방송 직후부터 여론은 서늘했다. 충녕대군(세종)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에 중국풍 소품이 빼곡했기 때문이다. 충녕대군이 구마사제를 접대하는 장면이 가장 문제였다. 중국풍 등불 아래 술상이 놓여 있는데 그 위에 중국 음식인 월병과 피단, 중국식 만두와 술병이 있었다. 현재 중국은 김치, 한복, 판소리 등을 모두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어 또 다른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태종 이방원이 무고한 백성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장면 등도 역사를 폄훼했다는 논란에 부딪혔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앞서 똑같은 논란을 빚은 tvN ‘철인왕후’의 박계옥이다.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해 몸살을 앓았으면서도 자성하지 않았다는 점에 시청자는 더 분노했다.
공분은 빠르게 확산했다.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방송 중단 청원 글은 이틀도 안 돼 14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제작에 투자한 삼성전자, CJ제일제당, LG생활건강, 에이스침대, 바디프렌드, 하이트진로 등 30곳이 넘는 기업들은 불매 운동을 우려해 일제히 손을 뗐다. 현재 조선구마사에 광고를 주는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심각성을 깨달은 공동 제작 3사(YG스튜디오플렉스·크레이브웍스·롯데컬쳐웍스)는 사과문을 내고 “명백한 제작진의 실수”라며 “중국의 협찬을 받지 않은 100% 국내 자본으로 제작된 드라마”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시청자는 다분히 중국을 의식한 연출이라고 보고 있다. 조선구마사의 광고대행사는 한중 간 콘텐츠 유통을 해오던 업체다. 중국 기업 텐센트가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제작사 중 한 곳인 YG스튜디오플렉스의 모회사 YG엔터테인먼트는 텐센트로부터 투자를 받고 있다. 텐센트가 지분을 가진 중국 대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아이치이는 한국 드라마를 공격적으로 수급하는 플랫폼이다. 앞서 박계옥은 최근 중국 대형 콘텐츠 제작사인 항저우쟈핑픽처스유한공사와 집필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실존 인물을 차용해 판타지적 상상력에 집중했다”는 제작사 측 해명 역시 본질을 벗어났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팩션일지라도 한국의 콘텐츠가 세계를 향하고 있는 지금, 역사 왜곡은 경계해야 한다는 취지다.
단지 중국에 대한 반감 때문만은 아니다. 현재 콘텐츠 업계에 거대 자본인 중국이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커 문화 잠식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제작자와 투자자 간 폭넓은 논의와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지만 중국의 요구를 뿌리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표현의 자유를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른 관계자는 “시청자의 기준이 날카로워져 이전보다 훨씬 더 꼼꼼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하지만 단순 실수도 의도적인 연출로 여겨져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