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발해가 한국 역사가 아닌 중국 역사라는 억지 주장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중국이 2002년 시작한 역사왜곡 프로젝트 ‘동북공정’ 이야기다. 당초 5년 기한 프로젝트였는데 동북공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의 힘이 세지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김치 종주국이 중국이라고 하더니, 한복도 중국 문화라고 했다. 문제는 이렇게 왜곡된 역사가 외국인에게 전달되면 그들은 이를 진짜로 믿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가 중국 문화로 오해되고, 우리가 중국의 속국처럼 비치는 것에 우려가 큰 시점이었다.
이런 엄중한 시기에 드라마 한 편이 불을 지폈다. SBS 월화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시작하자마자 역사왜곡 논란으로 퇴출 위기에 놓였다. 배경은 조선시대. 충녕대군(훗날 세종대왕)이 태종의 명을 받아 바티칸에서 온 사제에게 음식을 대접하는데 중국식 만두, 월병, 피단(삭힌 오리알)이 나온다. 술집 내부, 극중 의상과 소품도 중국풍이다. 조선이 배경인데 중국풍이 등장하면서 ‘문화공정’에 이용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세계적으로 한국 콘텐츠가 인기를 얻으면서 중국 자본이 한국 드라마에 침투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다른 드라마에 중국 비빔밥이나 인스턴트 훠궈가 뜬금없이 노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중국 자본이 들어오다 보면 간접광고에 그치지 않고 스토리까지 중국풍으로 영향을 받을 것을 경계한다. 사극의 역사왜곡도 우려된다.
눈 밝은 시청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오른 드라마 방영 중단 요청에 반응이 뜨겁다. 시청자들이 광고주를 압박하자 기업들이 드라마 광고에서 발을 뺐다. 삼성전자 등 대부분의 광고주들이 광고를 철회했다. 강경한 반응에 놀란 방송사는 다음 주 방송을 결방한 뒤 전체적인 내용을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초유의 상황이다. 방영된 문제 장면은 수정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뿔난 시청자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