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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밥상+머리] 그래도 도다리쑥국



언젠가부터 해마다 봄날이면 도다리쑥국을 끓인다. 순하고 여린 해쑥과 살 오른 도다리의 환상적 궁합으로 도다리쑥국은 봄철에 꼭 ‘먹어주어야’ 할 음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쑥 마니아일 뿐만 아니라 종종 혼술을 즐기는 나로서도 그 인식의 대열에 합류하는 걸 마다할 이유가 없다.

도다리쑥국의 유명도와 만족도에 비하면 요리 방법은 턱없이 쉽다. 다시마멸치육수에 무를 납작납작 썰어 넣고 한 번 끓인 후 알맞게 토막 낸 도다리를 투하. 마늘과 소금 적당량을 넣고 마지막에 쑥을 듬뿍 넣어 한소끔 끓이면 끝이다. 생물 도다리가 아니라면 된장을 조금 풀어 넣어도 좋다. 요리 솜씨가 없는 자도 맛을 낼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재료의 싱싱함과 봄날의 아우라 덕분이다. 도다리쑥국을 끓여 먹는 주말이면, 세상은 얼마나 순하고 보드랍고 아름다운가.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

루이 암스트롱이 ‘왓 어 원더풀 월드’라는 노래를 발표한 것은 1967년이다. 2년 후 이름이 비슷한 닐 암스트롱이 달나라로 날아가 인류 최초의 발걸음을 떼며 한 줄의 명언을 남겼다.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 멋진 카피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무렵 소련은 프라하의 봄을 맞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민주화 운동을 억눌렀고, 미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지구의 두 강대국은 아직 아무도 차지하지 못한 저 먼 달‘나라’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임으로써, 자국이 벌인 전쟁의 잔인함을 미래의 희망이라는 판타지로 전환하는 비상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었다. ‘왓 어 원더풀 월드’는 그 전략에 부합하는 저들만의 감탄사이거나 완벽한 반어(反語)의 헤드라인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광고인이 되고서도 아주 한참 후에야 알았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인식된’ 것이라는 걸. 국가 이념, 정책 구호, 기업 모토, 제품 슬로건 등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다. 한 시대, 한 사회의 패러다임 자체가 인식의 변화를 만드는 캠페인인 거다. 기록된 인류의 역사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광고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도다리쑥국의 도다리가 원래는 진짜 도다리가 아니라 ‘문치가자미’라는 것과 2~3월 새봄이 도다리의 진짜 제철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며 도다리쑥국의 진실을 폭로하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도다리쑥국이 봄날에 꼭 먹어주어야 하는 제철 음식이라는 인식의 배후에 정부와 대기업과 국가정보원, 혹은 선거전에 나선 정치인들의 치밀한 전략과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야. 베이컨을 미국인들의 아침 식사에 넣어 소위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만들어낸 것이 유명 마케터이고, 전 세계가 우유를 완전식품이라고 믿어버리게 된 것은 미국 낙농업계의 힘이다. 은밀하게 활동하는 대한민국 쑥 협회나 남도어촌계 도다리마케팅위원회가 있어 우리의 뇌와 입맛을 조작해온 것이 아니라면, 나는 내년 봄에도 또 도다리쑥국을 끓일 거다.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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