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전공했다고 하면 보통 뭔가 옷 잘 입는 비법을 알고 있겠지 하는 표정을 짓거나, 가끔은 자신의 옷차림이 평가될 것 같은지 조금 불편해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옷에 대해 공부하고 입는 연습을 해왔으니 아무래도 옷 입는 게 조금은 편안해졌고 다른 사람의 옷에도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나 좋은 옷을 잘 갖춰 입었나를 관찰한다기보다 그 사람의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을 엿보게 된다. 검소하다든가 겉치레에는 큰 관심이 없다든가 그런 모습 말이다.
옷 잘 입는 법에 대해 간단히 말하기는 어렵다. 유행이 계속 변하고 사람마다 취향도 다 다르고 나를 바라보는 상대의 기대와 가치관마저 제각각이라, 옷을 잘 입기는커녕 적절히 입기도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매일 그날 만날 사람을 떠올리며 입을 옷을 결정하는 건 누구에게나 조금은 고민거리가 된다. 오죽하면 스티브 잡스는 옷장에 같은 옷을 여러 벌 걸어놓고 매일 같은 스타일로 입었을까.
슬기로운 패션 생활을 위해 복잡한 고민은 조금 내려놓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몇 년 전 여러 일을 동시에 하면서 내 옷장 속 옷들로는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절감했다. 한참 어린 후배들과 같이 지내면서 후배들 유행에 맞추다 보니 캐주얼한 옷이 많아졌다. 그러다 대학 강의를 맡게 되었을 때 학생들은 트렌디한 캐주얼 차림을 쿨하게 여길 텐데 지나가던 다른 교수님이 끌끌 대실 게 걱정스러워 한참 고민을 했다. 일반 마케팅 회사에서는 나만 너무 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가 패션 디자이너라도 만나러 갈 때는 이렇게 평범한 옷을 입어도 되나 부끄러웠다. 가끔 금융권 클라이언트와의 회의에는 그래도 정장 스타일로 입어야 할 텐데 정장은 마땅히 구할 곳도 없었다. 이토록 극단적인 상황에 맞닥뜨려서야 포기가 되었다. 다 맞추려 말고 그저 내 멋을 즐기면서, 가끔 마주치게 될 불편한 시선은 그의 몫으로 남기는 거로.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