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강세균이 사이토카인 유발… 코로나 감염 땐 중증으로 악화
중환자실 입원 위험 3.5배 ↑… 전신 염증 지표도 올라가
건강한 잇몸 유지 땐 89% ↓
흔히 ‘풍치’로 불리는 치주병은 치아를 둘러싼 잇몸(치은)과 잇몸뼈(치조골)에 생기는 염증 질환이다. 5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9년 외래 진료 다빈도 질환’에 따르면 치은염과 치주병으로 진료받은 사람은 1673만명으로 급성기관지염(감기)을 넘어 1위에 올랐다. 치주병은 정도에 따라 잇몸 출혈, 치아 시림, 치아 흔들림 등 증상으로 나타난다. 만성 염증의 폐해는 치아 주변 조직에 머무르지 않는다.
치주병이 심할 경우 입안 세균이 잇몸 주변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전신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여러 연구를 통해 치주병 환자는 비환자에 비해 뇌졸중 2.8배, 치매 1.7배, 심장질환 2.7배, 당뇨병 6배, 폐렴 4.2배, 남성 성기능장애 1.5배, 조산·저체중아출산 7.5배 위험이 높은 걸로 보고돼 있다.
여기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질병이 하나 더 추가됐다. 1년 넘게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19다. 대한치주과학회는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대 마리아노 산조 교수팀의 주목할만한 연구결과를 소개하며 잇몸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조 교수는 캐나다, 카타르 의료진과 공동 연구를 통해 지난해 2~7월 18세 이상 코로나19 감염자 가운데 치과진료 기록이 있는 568명을 대상으로 치주병과 코로나19 감염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치주병 환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중환자실 입원 가능성이 3.5배 더 높고 보조 인공호흡기 착용 확률은 4.5배, 사망 위험은 8.8배 높게 나왔다. 또 코로나19에 걸린 치주질환자들에서 더 높은 수치의 전신 염증 지표(백혈구, C반응성단백질, D-2합체)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코로나19의 합병증 위험이 경증 또는 비치주염 환자들에 비해 중등도 내지 중증 치주염에서 유의하게 높았고 여러가지 혼란 변수를 조정한 후에도 치주염은 코로나19 감염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한양대 치과 한지영 교수는 이에 대해 치주과학회 주최 기자간담회에서 “치주질환자의 구강에 사는 세균의 흡인이 염증성 사이토카인(면역조절 물질) 생성, 코로나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인체 내 ACE-2수용체의 발현, 스파이크 단백질의 분할 등을 유도해 코로나19의 중증 진행을 유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평소 치주병을 치료하고 건강한 잇몸을 유지하면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보조 호흡기 사용 78%, 중환자실 전원 72%, 사망 가능성은 89% 줄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치주과학회는 코로나 시대 잇몸 관리를 위한 ‘3·2·4 수칙’을 발표했다. 먼저 ‘3’은 매번 3분 이상 칫솔질하자는 것이다. 구강 내 치주낭(치아와 잇몸 틈새)은 바이러스의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다. 일부 치주질환 관련 세균들은 특정 효소의 발현을 조절하는데 관여하며 코로나19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구석구석 닦아야 한다.
‘2’는 1년에 두 번 스케일링 받자는 뜻이다. 이는 매년 2회 이상 구강건강 상태를 점검하자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치과의 경우 필연적으로 비말과 에어로졸이 발생하는 치료가 많아 직·간접 접촉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 있다. 치주과학회는 이에 대해 “방역당국의 치과 진료 지침에 따라 철저한 방역관리를 하고 있으며 덕분에 지금까지 치과의사 코로나19 감염자는 3명에 불과하며 원내 감염은 없다. 또 치과가 집단감염의 중심이 된 적도 없다”며 “치과진료를 주저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치주과학회장인 허익 경희대치과병원 교수는 “다만 최근 시중에서 많이 판매되고 있는 ‘초음파 스케일러’를 이용한 자가 스케일링을 치과의사의 정확한 진단 없이 시행하면 부적절한 치료가 될 가능성이 높고 경우에 따라 심한 치주조직 손상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4’는 사(4)이사이 잇몸까지 잘 닦자를 의미한다. 칫솔질 뿐만 아니라 치실, 치간칫솔 등 보조기구를 활용해 꼼꼼히 구강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치주병이 진행됐거나 임플란트 치료를 받은 경우 치아 주변 혹은 치아와 치아 사이에 음식물, 치태, 세균 침착이 많다. 치아 사이 잇몸이 100% 찬 경우 치실(1일 1회 이상), 치아 사이 잇몸이 절반 정도 내려갔다면 치간칫솔, 치아 사이 잇몸이 많이 내려간 경우엔 첨단칫솔 사용이 권장된다. 치주병이 있으면 3개월 마다 치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