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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도 지킨 ‘영원한 국수’ 반상서 천상으로

바둑판 앞에서 묘수를 생각하고 있는 생전의 김인 9단. 한국기원 제공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이 4일 오전 9시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고인은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한국 현대 바둑의 개척자’ 조남철 9단을 3대 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71년 15기까지 국수전 6연패를 달성해 바둑계에선 ‘영원한 국수’로 통했다. 9단으로 승단한 건 83년.

4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고인은 13세인 56년 바둑판을 안고 홀로 상경해 바둑 원로 김봉선과 아마 고수 이학진을 사사했다. 15세인 58년 프로에 입단한 고인은 62년 조남철 9단의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9단의 문하에서 1년 8개월 동안 유학했다.

이때 또래 유망주를 상대로 80% 전후의 승률을 기록하자 당시 일본에서는 ‘머지않아 김죽림(金竹林) 시대가 올 것’이라 봤다. 한국·일본·대만 출신 유망주들인 김인,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린하이펑(林海峰)이 조만간 바둑계를 지배할 것이란 예측이었다. 기타니도장 사범으로 활동하면서 조치훈을 지도했다.

고인은 규율이 강한 기타니도장 생활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기타니 9단의 만류를 뿌리치고 63년 귀국했다. 66년 제1기 우승을 시작으로 왕위전 7연패와 통산 8회 우승을 이뤘다. 66년 제6기 우승 뒤 패왕전 7연패를 달성하는 등 통산 30회 우승, 22회 준우승 기록을 남겼다.

63년간 한국기원 전문기사로 활약한 그는 통산 1568전 860승 5무 703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68년 한 해 거둔 40연승은 아직 깨지지 않은 한국기원 최다 연승 기록으로 남아있다.

고인은 중후한 인품으로 바둑계를 위해 힘썼고 상금과 대국료로 가난한 동료들을 지원해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다. 바둑의 도(道)를 존중하고 지키며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시한 그는 TV바둑이 바둑의 본질에 어긋난다며 참가하지 않는 소신을 보였다. 바둑계에서 그를 변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청산(靑山)이라고도 불렀다. 71~75년 제 5~8대 기사회장을 지냈고 2004년부터는 한국기원 이사로 활동했다. 2007년부터 매년 그의 이름을 딴 국제 시니어 바둑대회가 고향 강진에서 열린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 씨와 1남이 있으며 발인은 6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추모공원이다. 빈소는 연세대 신촌장례식장 특2호실에 마련됐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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