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목소리는 과격해지고 고소·고발 난무,
사실과 의혹, 허위가 뒤섞여 진실은 뒷전
대화보다 대결, 타협보다 배제… 정파성에 찌든 패거리 정치
당선자는 선거 활극 복기하고광기를 씻어내야
정치에 희망 민주주의도 발전시킬 수 있어
사실과 의혹, 허위가 뒤섞여 진실은 뒷전
대화보다 대결, 타협보다 배제… 정파성에 찌든 패거리 정치
당선자는 선거 활극 복기하고광기를 씻어내야
정치에 희망 민주주의도 발전시킬 수 있어
‘국가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도둑놈이 많습니다’. 몇몇 신문에 실린 광고가 눈에 확 들어온다. 국가혁명당 서울시장 후보 허경영이 내건 선거 구호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진 않는다. 그러나 LH 사태와 겉 다르고 속 다른 권력층의 위선을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국민들 속 뒤집어놓고, 뒷전에서 벌인 일탈은 분노를 넘어 허탈하게 만든다. 여야 모두 오십보백보다. 국민을 개, 돼지로 보지 않고서야 이럴 순 없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재·보궐선거를 앞둔 정치권이 뜨겁다. 한데 저주의 난장이다. 여야의 목소리는 과격해지고 고소·고발이 난무한다. 사실과 의혹, 허위가 뒤섞였다. 당연히 진실은 뒷전이다. 좀 더 나은 시민의 삶을 위해 어떤 시정을 펼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근거 없이 경쟁자를 상처내고 그것도 모자라 상처에 소금까지 뿌리며 헐뜯는데 치중했다. 그렇다고 정책 청사진이 매력적이지도 않다. 때론 머리를 조아리고 반성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경험에서 판단컨대 그때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제대로 간파했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뭔가 빨아먹을 준비를 할 때고, 우리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라고.
재론하기조차 민망하지만 정치권의 행태를 되짚어보자. 야권은 문재인 대통령을 ‘중증 치매환자’에 비유했다. 그러자 여권에선 야당 후보를 ‘쓰레기’라고 맞받았다. ‘대마도 뷰’ ‘야스쿠니 신사 뷰’라는 친일 프레임으로 상대를 옭아매려고 했다. 논리도 없고, 근거도 황당하다. 그냥 배설일 뿐이다. 악의적 유언비어도 나돈다. ‘너 죽고, 나 살자’다. 뒷골목 조폭은 의리라도 있지만 정치권은 동네 양아치 수준이다. ‘고무신 선거’ ‘막걸리 선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공동 저술한 역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쿠데타 같은 폭력으로 위협받는 게 아니다. 투표장에서 무너진다”고 한탄했다. 딱 그대로다.
쟁점도 많았고, 이런저런 의혹도 제기됐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없다. 몇 차례 토론이 있었지만 쟁점은 쟁점대로, 의혹은 의혹대로 남아있다. 되레 정치혐오만 커졌다. 화려한 수사로 표를 구했고, 독설로 상대를 공격했다. 조롱으로 정치의 품격을 깎아내렸다. 마치 누가 더 저열한가를 따지는 나쁜 사람 경연장 같다. 선거라는 특수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심하다.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고, 저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 이때는 선과 악도 모두 붉을 뿐이다.” 오래된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이준기의 독백이 섬뜩하게 와 닿는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시다시피 민주주의 작동원리는 대화와 타협이다. 정치는 그 원리를 실현하는 과정이자 수단이다. 대화 아닌 대결, 타협 아닌 배제의 원리가 지배하면 민주주의가 질식한다. 내 편은 선이고, 네 편은 악이다. 정파성에 찌든 패거리 정치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는 논리나 이성을 마비시킨다. 진실은 희생되고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 몫이다.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의 분석대로 ‘정치적 부족주의’의 민낯을 우리 정치에서 본다. 네거티브 선거였다는 말조차 사치스럽다. 과거 어느 선거가 이렇지 않았느냐마는 갈수록 심해지니 그저 답답하고 화가 치민다. 누가 선거를 축제라고 했나. 슬픈 선거다.
그래도 투표장으로 가자. 아니 그래서 가야 한다.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고, 선택의 권한도, 결과의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정치권의 자제력 잃은 주장이나 묻지마 공약은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투표로 심판받기 때문이다. 내일이 투표일이다. 전국 21개 선거구에서 치러진다. 투표권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피어린 투쟁의 산물이다. 그만큼 소중하다.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에 시동을 거는 것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도 선거다. 선거가 민주주의 꽃인 이유다. 누가 당선되든 선거 활극을 복기하고, 그 광기를 씻어내지 못하면 정치에 희망은 없고, 민주주의는 후퇴한다. 수술 후 드레싱을 하지 않으면 상처가 더 깊어지고 끝내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