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일본)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일본 교토에 있는 한국계 민족학교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지난달 24일 효고현 한신 고시엔구장에 울려 퍼졌다.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처음 출전한 교토국제고가 연장 접전 끝에 32강전 승리를 거둔 뒤였다. 1947년 재일교포가 세운 이 학교는 그때 만든 교가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교토국제고 박경수(62) 교장은 승리가 확정된 순간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박 교장은 지난 2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고시엔 출전 자체가 기쁨이었는데 바라던 첫 승까지 하게 됐다”며 “현장에선 종교적으로 표현하는 걸 금해서 겉으론 드러내지 못했지만, 속으로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드렸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의 고시엔 첫 승에 일본 언론들은 기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누구도 교토국제고의 승리를 예상 못했다. 100년 역사 고시엔에 외국계 학교가 진출한 것이 처음인 데다 교토국제고가 전교생 131명 규모에 선수단은 40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였기 때문이었다. 박 교장은 “우리 학교를 제외한 대부분 학교들은 골리앗과 같았다”며 “대회 목표로 1승만 올렸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주변 사람들도 ‘감무료, 감무료(감개무량)’ 그러더라”고 전했다.
교토국제고 야구부는 1999년 창단됐다. 당시 극심한 운영난에 허덕이던 학교가 학생 수 감소를 막고자 내린 처방이었다. 야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지만, 초창기엔 야구부라 하기 힘들 정도였다. 운동장도 작아서 외야도 반쪽뿐이었고, 첫 출전한 시합에선 0대 34로 대패하기도 했다.
2004년 학교가 성격을 바꿔 일본 학생을 받아들이면서 조금씩 야구부의 모습이 갖춰졌다. 당시 박 교장은 한국 교육부 소속 공무원이었는데, 교토국제고가 일본 교육법에 따라 문부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1조 학교로 전환되도록 실무 작업을 했다. 박 교장과 교토국제고의 인연의 시작이었다. 현재는 전교생 131명 중 일본인 학생이 93명으로 한국 국적 학생 37명보다 더 많다. 이번 대회에 나선 야구부 역시 대부분 이중 국적자로 모두 일본 국적을 갖고 있다.
교토국제고가 야구로 두각을 나타낸 건 2018년이었다. 공교롭게도 박 교장이 교장으로 부임한 이듬해부터였다. 이전까지 지역대회 3~4위 정도에 머물던 교토국제고는 그해 교토부 고교대회 준우승에 이어, 지난해 오사카와 교토부를 포함한 긴키 지역 고교대회 4강에 올라 고시엔 출전권을 따냈다.
박 교장은 선수들이 경기를 치를 때마다 새벽에 일어나 출전 선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갔다 예수를 영접한 그는 기도에 힘이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중보야말로 아이들을 위해 학교 교장이자, 신앙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선수들이 부상 없이 야구를 즐기게 해 달라고, 그리고 애써 연습한 것들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드렸다”며 “또한 시합의 결과물들이 졸업 때 사회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잘 인도해 달라고 부탁드렸다”고 말했다.
교토국제고는 16강전에서 9회말 2아웃까지 이기다가 4대 5로 아깝게 역전패했다. 비록 교토국제고의 봄 고시엔은 여기서 막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박 교장은 감사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의 변화를 봤고, 이는 지금껏 그가 했던 기도의 응답이었다.
박 교장은 카카오톡 상태메시지에 요한복음 20장 18절 “내가 주를 보았다”는 말씀을 써 놨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말씀 구절을 변경하지만 이번 말씀은 바꾸지 않고 4개월 넘게 두고 있다. 그는 이유를 “고시엔 진출과 첫 승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학교 내 많은 긍정적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다”며 “그 변화 자체가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하심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