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본능의 미래’가 소개하는 도발적인 주장 중 하나는 이렇다. 2050년이면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합법적인 일이 될 것이다. ‘2050년’이나 ‘결혼’ 같은 구체적인 단어를 제외하고 따져보면 저 예측은 어느 정도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게으른 SF는 미래를 표현하는 클리셰로 로봇이나 인공지능의 성매매를 쓰고는 한다.
그것이 누구나 상상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섹스인형으로 표상되는 미래는 누군가에게는 디스토피아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간절하게 기다리는 흥미진진한 내일이다.
작가의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유발하는 인터뷰이, ‘데이브캣’은 그중 후자다. 그는 섹스인형을 여럿 사들여 집 안에 놓고 아내, 여자친구, 로맨틱한 관계 등의 역할을 부여한다. 그는 인형들과 자신의 관계가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형의 이름을 지어주고 신발을 사주고 타인에게 소개할 때에는 다정한 남자친구의 면모를 보이지만, 어쨌거나 상대는 로봇이다. 데이브캣의 논리는 간단하다. 더는 연인의 거짓말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더는 사람을 상대하는 어려움에 처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서 연인이나 사람은 물론 여성을 뜻한다.
섹스인형은, 그것이 로봇이든 인형이든 인공지능이든 상관없이, 데이브캣에게 복종할 것이다. 여성과는 다르지만, 그럼으로써 섹스인형은 데이브캣 같은 사람에게 있어 ‘완벽한 여성’이 된다.
책의 원제는 ‘SEX ROBOTS & VEGAN MEAT’이다. 앞서 말한 섹스인형은 책이 말하는 본능의 미래 중 일부에 불과하다. 제목처럼 책은 성욕으로 시작해 식욕을 지나쳐 대체되는 탄생의 과정과 선택되는 죽음의 형식까지 다룬다. 기술의 발전은 섹스하고 먹고 태어나고 죽는 일에 인간이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한다. 기술에 의한 해소는 본질에 대한 탐구를 가로막는 면이 있다.
예컨대 ‘남성은 왜 참지를 못하는가’ 하는 질문이 그렇다. 참지 못하는데 참아야 할 위치에 놓인 (일부) 남성은 성적 좌절감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거나 강간을 저지르거나 최소한 여성 혐오자가 된다. 그런 그들의 모난 감정을 다독여주기 위해 섹스인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뛰어난 기술의 우회적 해결책이겠으나, 그렇다고 이 일이 로봇의 표면처럼 매끈하게 해결될지는 알 수 없다.
여기 참는 남자가 있다. 동시에 참지 않는 남자가 있다. 엘우드가 참는 것은 성욕이 아니다. 엘우드가 참지 않는 것은 폭력과 차별의 부당성이다.
‘AI 시대, 본능의 미래’에 이어 2020년 퓰리처상 수상작 ‘니클의 소년들’을 읽었다. 엘우드는 196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아프리칸-아메리칸이다. 다시 말해 그는 인종차별을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던 흑인이다. 할머니의 자상하되 분별력 있는 교육 아래 남을 속이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자란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마틴 루서 킹 연설 음반을 들으며 세상의 부조리에 맞설 용기와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자존감을 키운다. 하지만 우연과 운명은 엘우드에게 그가 꿈꾸던 대학생활을 허락하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누명으로 그는 사설 소년 감화원인 ‘니클’에 입소하게 된다.
소설은 니클 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인간들과 그들의 피해자가 돼야 했던 아이들, 특히 감화원 안에서도 차별을 받던 흑인 소년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처럼 실감 나게 표현한다. 감화원이 소년들에게 바란 것은 없었다. 그저 그들이 인간이 아니길 바랐던 것 같다. 그들에게 소년은 돈벌이 수단인 동시에 놀잇감이고 죽으면 귀찮아지는 존재였다. 그 안에서 엘우드의 품격과 존엄은 빛이 난다. 그 빛은 곁에 있는 친구의 운명을 바꿔 놓는다.
인공지능이 바꿔놓을 앞으로 50년을 함부로 예측할 수 없듯이, 인간의 의지가 서서히 바꿔놓은 지난 50년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인간은, 끝내 인간이고자 노력할 때에만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인공적인 무언가는 인간이 될 수 없다. 약자에 대한 폭력이든, 약자의 기술적 재현이든, 그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인간이기 위해서 우리는 품위와 존엄이라는 노력이 필요하다. 50년 전부터, 50년 후까지, 아니 100년이 훌쩍 넘어서라도.
서효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