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서울로 떠나는 내게
경제 비상용으로 끼워진 금반지
그 용도를 찾지 못해 오랫동안 머물렀네.
젊음이 상처가 되는 밤마다
손수건 대신 눈물 닦아주던 손가락의 반지
그마저 위로가 절로 되던 둥근 해 같은
눈물이 닿은 손가락은 더 뻑뻑하게 조여왔네
구애의 반지 그 위에 새로 끼워졌지만
빛을 잃은 그 반지 뽑혀지지 않았지.
부끄러워 입을 가린 사진 속에서
선명하게 떠오르네, 그 반지
서른 살, 손가락 마디가 굵어져
빼어볼 수 없어 언제나 같이 있네.
새벽에 문득 깨어나 부은 손가락 만지면
그 손가락 살을 누르며 존재를
빛내주던 그것,
십 년 동안 변함없이 머물렀던
생의 하사품, 추억의 금빛 물결
이제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반지 속의 나날이여.
정은숙 시집 ‘비밀을 사랑한 이유’ 중
비상용으로 낀 금반지는 시인의 젊은 시절을 적잖이 위로했다. 시인이 나이를 먹을수록 반지는 빛을 잃었지만, 마디가 굵어진 후에도 반지를 빼진 않았다. 젊은 날을 함께 견딘 동지이자 생의 하사품인 반지를 빼 들여다보면 젊은 날의 시인과 나이든 시인이 모두 비칠 것 같다.